지난해 12월 교육부는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였다. 개선안에 따르면 대학들은 자율적으로 다학기제, 융합(공유)전공, 이동·원격수업을 운영하는 유연한 학사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학들이 지속적으로 규제완화를 요구해온 탓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학사운영 시스템으로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시대’가 요구하는 핵심인력을 양성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학사운영의 자율성이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하는 대학들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이 개선안의 핵심은 대학의 학과제
늘 궁금했었다. 누가 물어 봐도 자신 있게 대답해 주지 못했다. 표지석의 문구만으로는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당시 대학신문을 들추어보니 ‘제막 앞둔 용봉탑’(전남대학보, 1978. 5. 18. 발행)이란 기사가 반갑기만 하다.대부분의 대학들은 나름대로 상징적인 탑을 가지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초·중·고등학교에도 상징탑이 있다. 상징탑(용봉탑)은 제2대 호국단시절인 1976년 11월 9일에 당시 사단장이하 호국단 간부들이 민준식 총장에게 상징탑의 건립을 건의해서 비롯되었다. 학생들의 의견조사 설문지에는 ‘개교 24주년이 지난 오늘
2017년 화두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공약. 이는 본래 존재하는 교사 검증 제도인 임용고시를 보지 않고도 몇 년의 학교 근무를 통해 정규직 교사로 임명되는 공약이다. 이에 대해 전국의 예비교사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조차 갖은 의문과 비판을 쏟아냈다. 정규직화 공약의 취지는 기간제 교사들이 합당한 권리를 누리게 해 한국 사회를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확실히 기간제 교사의 처지가 정규 교사들에 비해 많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장기간 근무를 할 수 없어 고용의 불안에 시달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담배 파이프 그림 아래 적혀있는 메시지다. 이를 통해 작품 속 파이프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이프라는 단어 역시 사물을 지시하는 단어일 뿐 그 본연의 존재는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단어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그렇다면 대학가의 최대 화두인 ‘융·복합형 인재’라는 단어의 실재는 무엇일까. 얼마 전 정병석 총장은 ‘어젠다 (Agenda) 2021’ 선포식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 미래형 인재 양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기조에 발맞춰 우리 대학은 계열별로 의무 이수학점을
모두들 올 여름 무더위 잘 버티셨습니다. 함께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엊그제 8월 11일이 말복이었습니다. 말~~~복 많이 받으세요. 당연히 末伏(복날)에서 伏(복)이 福(복)은 아니 것은 아시죠? 왜 복날에 伏자를 썼을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사람(人) + 개(犬)의 조합입니다. 伏(복)은 엎드릴 복자입니다. 굴복 혹은 순종의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사람에게 가장 순종적인 가축은 개여서 그럴까요? 이 무더위에 힘쓰지 말고 개처럼 엎드려 쉬라는 메시지일까요? 복날에 개를 찾는 것은 아마도 伏자에 개(犬)가 들어가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총장의 아젠다가 제시되었지만 구성원에게 감동과 기대를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전 10년 동안 대학의 구성원을 불안하고 피곤하게 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에 길들여지고 무기력했던 대학을 자유롭고 민주적인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이 아직은 실감나지 않는다. 정치권력은 지시 사항에 따르지 않으면 예산을 삭감하고 각종 사업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해 왔고, 우리 대학은 이에 “아니요.”라고 답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사업을 수주받기 위해 교육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을 피하고자 애썼
‘용지’는 단순히 관상용이나 조경차원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1969년 어느 날 총장실에 들른 백발 도인은 유기춘 총장에게 “연못이 있어야 용이 승천하는데 뭐하느냐!” 호통을 쳤다고 한다. “용이 승천해야 대학에 큰 인물이 날 텐데” 혀를 끌끌 차면서…다행히 영문학과 동문인 송호림 장군이 ‘CAC’(전투병과 교육사령부, 흔히 ‘상무대’라는 군사교육기지) 사령관으로 있어서 중장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1969년 여름부터 연못을 파기 시작하여 1971년에 완공하였다.유총장이 임기도 끝나기 전인 1974년에 문교부장관
‘전대신문 학교 홍보지로 바뀌었나요?’ 지난 6월 페이스북 에 올라온 질문이다. 이외에도 신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날선 비판이 사라졌다는 피드백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날카로운 지적들은 송곳처럼 아프게 찔러왔다.그래서 고민했다. 대학언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다. 하지만 학생사회가 대학의 흐름 변화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적으로는 절대다수지만 정보에 대한 접근이나 제도 등의 부분에서 ‘구조적 약자’다. 대학언론은 그래서 존재한다. 근본적 진실을
나는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각종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가장 큰 스트레스는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 발생한다. 흔히들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 열 가지를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은 단순 쾌락이 목적인 경우가 많고, 하기 싫은 일은 특정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 혹은 의무인 것이 보통이다.나는 해야할 일을 하고 있지 않는 모든 순간의 머릿속 한켠에 불안함이 공존한다. 학생이 해야할 일은 공부다. 대학원생의 신분인 나에게 해야할 일을 먼저 끝내고 놀면 된다는
캠퍼스에 피어있는 수목과 꽃들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학생들의 맑은 눈망울과 가벼운 발걸음에서도 쾌적함이 느껴지는 그러한 계절, 6월이다. 학생들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기말고사를 치르고 약 2개월 동안 긴 휴식과 재충전에 들어갈 것이다.지난 수개월 동안 우리는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미증유의 ‘정치공백기’를 보내야만 했다. 하여 내치도 외교도 사실상 제로상태에 있었다는 장삼이사의 말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어둡고 힘겨운 시절을 대다수의 국민들은 ‘반전을 고대하며’ 인내하면서 보내야만 했다.
나는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온양온천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랐다. 나의 고장에서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우리나라에 큰 변화를 가져와준 역사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에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저 교과서 속 지식에 불과했다. 그래서 더욱 연극 “오!금남식당”를 보며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오!금남식당”의 줄거리는 이렇다. 금남관의 주인인 ‘오금남’이 식당을 물려받을 후계자를 뽑기 위해 요리 경연을 개최한다. 경연자들은 오금남의 미션에 따라 요리 실
“There are no two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more harmful than good job.”(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이 “그만하면 됐어”야.)오랜만에 쉴 수 있던 주말, 꺼내든 영화 ‘위플래쉬(Whiplash)'에서 나온 대사다. 순간 영화를 보며 가슴이 철렁했다. “그만하면 됐어”란 말은 필자가 이번 학기동안 신문을 만들며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기 때문이다.왜 우리는 더 좋은 신문을 만들지 못했을까? 돌아보면 핑계뿐이었다. ‘기자가 별로 없어서’, ‘2년차 국장이니까’ 등 혹평에 이미
1987년 10월 29일, 헌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산물이었다. 긴 한 문장으로 된 헌법 전문은 숨 쉬지 않고 읽었다간 숨이 멈춰버릴 수 있다. 그러나 절마다 쉼표를 두어 숨이 넘어가는 일은 없다.‘왜 헌법 전문이 한 문장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곰곰이 새겨해 볼 일이다. 이 길고 한 문장으로 된 헌법 전문의 글자 수는 328자이며, 節의 수는 11개로 되어 있다. 한 번에 읽고, ‘주어+서술어’를 따지려하다가는 그 내용 파악을 쉽게 놓칠 수도 있다.
본지 연두 사설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저항권에서 비롯된 촛불 민심에 즈음하여 향후 도래할 ‘대전환의 시대’를 예고하였다. 예상대로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헌법 수호의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였다. 그런 점에서 국민 저항권의 근거가 ‘국민 기본권’과 ‘헌법 수호를 위한 수단’으로 해석되는 데에는 충분한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37년 전 5월 그때도 우리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저항권을 분연히 행사하였지만 폭력적인 공권력은 우리의 기본권을 무참히 유린하고, 오랫
대개의 사람들이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5·18민중항쟁의 아픔은 잊어야 할 무언가는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죽였고 누군가는 죽었다. 세월은 흘렀고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조금은 잊어버렸다.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면서 광장에 있던 탄흔도 지워졌다. 폭력을 주도하고 군림했던 사람이 자기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고통을 떠올리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러한 외면이 가해자의 자기변명이 되는 것 역시 께름칙한 일이다.역사의 한 장면으로 5·18민중항쟁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광주정신에는 의문을 표하는
나는 인도에서 태어났다. 한국에 온 지는 벌써 2년이 조금 넘었고 광주에서 지낸 지는 이제 1년 반 정도 됐다.내가 광주로 유학을 온 이후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왜 (혹은) 어떻게 서울이 아닌 광주로 유학을 왔어요?”다. 나는 이 질문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교수님께서 전남대를 추천하셔서 왔어요.”라고 대답했었다.그러다 우연히 광주의 위대한 역사를 접하게 됐다. 그리고 그 날 광주의 중요한 역사 중 하나인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게 됐다. 그 후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던 나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더 자
“만약 드라마 처럼 1980년 그때 그 사람들과 무전을 하게 된다면, 그래서 그들이 당신이 사는 2017년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멈춘 5·18 관련 시사프로그램의 마지막 멘트였다. 비록 처음부터 시청하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뜨끔했다. 우리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필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답은 “아니요. 당신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민주주의이지만 치솟는 취업난 때문에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지 고민하기도 바쁜 삶이거든요.”이기 때문이
2017년 총학생회장 재선거가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었다. 투표기간을 이틀이나 연장했으나, 최종 투표율은 과반수에 턱없이 부족한 42.17%에 그쳤다. 여수 캠퍼스는 아예 입후보자가 없어 재선거를 치르지도 못했다. 대학의 핵심 주체인 학생들 스스로가 자치기구를 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매우 실망스럽고 안타깝다. 1985년 총학생회 부활 후 31년 동안 이어진 자치기구 구성 및 운영에 최대 위기다. 대학의 본질적인 기능 중 하나인 민주시민교육의 실천 장이 사라질 상황이다. 그 동안 총학생회는 외부 세력의 탄압을 받고 관계자들이 제 역할
“이제 그만하면 안돼요?”4월 16일이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들려온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소리는 필자에게 더 이상 이상하지 않다. 정말 잊을 때가 된 것인가?세월호는 이제 1075일이라는 시간을 끝으로 깊은 바다 밖으로 나와 그 날의 일들을 설명해주려고 한다. 아직도 9명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유가족들은 그들이 돌아오길 바라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정말 잊을 때가 된 것인가?프랑스의 사회운동가 스테판 에셀은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라고 말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이번에 치러진 4월 총학생회
금남로! 5.18 민주화운동의 그 현장. 듣기만 해도 가슴 시리고 생동감 넘친다. 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점령당하던 때에도 금남로는 묵묵히 시대의 아픔을 함께 했다. 이후 그곳은 80년대 내내 광주 민주화 투쟁의 장소가 되었다. 흔히 운동권에서 부르는 노래 중에 ‘금남로’는 ‘무등산’과 함께 빠지지 않은 가사가 되었다. 금남로는 매년 5.18을 기념하는 행사장으로 상징화되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도 금남로는 우리를 불렀다. 바로 그곳에서 작년과 올 3월 11일까지 광주시민들은 매주 토요일 빠지지 않고 박근혜 탁핵을 외쳤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