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신의 의견을 가져라.”살아 있는 물고기를 손에 넣기 위해선 스스로 물고기를 낚아 올려야 하듯, 자신의 의견을 가지기 위해선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파고들어 언어화해야 한다. 그 말을 몸소 증명하듯, 니체는 자신의 철학을 언어라는 그물로 건져 세상에 던져놓았다. 이 책은 니체가 스스로 낚아 올린 물고기들을 늘어놓은 책이다. 자신, 기쁨, 삶, 마음, 친구, 세상, 인간, 사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살아 숨 쉬는 니체의 철학은 깊은 고뇌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술술 읽힌다.장황한 설명이 없기에 더욱 쉽게 우리의 생각 사이를 유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라는 게 쉽지 않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내면 깊이 받아들이는 일은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거나 생전 흔적을 미리 정리하는 일과는 전연 다른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준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하여 아픔 없는 작별이 가능하다면.『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슬픔을 어루만지고 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머리로는 더 이상 기억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자 노아에게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어릴 적 겪은 경험은 사람의 인생에 뿌리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학대를 받고 자랐는지, 아니면 무관심 속에 자랐는지. 에 수록된 과 는 어릴 적의 트라우마로 인해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인간의 두 가지 전형을 통해 우리에게 ‘성장’과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세계에는 ‘슈리쥴리’라고 불리는 가상의 생명체가 존재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체동물인 블루드래곤이 연상되는 신비로운 생김새에 인기 만점인 인공생명체. 심지어 주인의 과잉된 감정을 먹
귀엽고 편안한 아포칼립스 이야기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혹자는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그럼 아포칼립스가 아니지 않아?’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아포칼립스 문학으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다소 애매한 고민이 따른다. 아포칼립스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전염병 플롯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아포칼립스 상황처럼 생존자들이 큰 시련을 겪지도 않고, 생존자 집단을 위협하는 악인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 기껏해야 잠에 드는 정도다.수면 바이러스가 퍼
“문장은 나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담기엔 너무 협소하다.” 앞 문장을 읽고 이 책을 읽게 됐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시인의 생각과 마음이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새롭다’라는 느낌보다는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표현해내지 못했던 내 마음을 언어화시켜주는 것 같았다.책은 성동혁 시인의 산문집이다. 시인은 주변 사람들을 충만하게 아낄 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자신의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그의 인간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는 좋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태도를
흔히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귀중히 여기는 마음, 때로는 희생하는 마음처럼 말이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art’, 그러니까 하나의 기술로 보았다.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술을 터득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프롬이 말하는 이 기술로서의 사랑, 그리고 사랑을 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엇일까?사랑의 기술이라고 해서 누군가를 유혹하고 연애의 고수가 되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로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객관성’이다.
는 SNS에서 관심을 받았던 책이며 영화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은 책이다. 그래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이 책의 메인 스토리는 여자 주인공의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뤘던 영화 를 봤었기 때문인지 아이디어에 대한 신선함보다는 진부함이 앞섰다.책의 여자주인공은 모종의 사고가 발생한 이후부터의 기억을 축적하지 못하는 기억장애를 앓고 있다. 남자주인공은 원래 반에서 조용하지만 학교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에
‘사회가 변동한다’는 이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들린다. 하물며 인간도 나이가 들며 성격이 변하는데,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사회가 바뀌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현재 발 딛고 서 있는 사회를 언제까지나 과거에 ‘우리가 알던 세계’로, 즉 한 자리에 고정되어 상존하는 실체로 여긴다. 일례로 현대 독일이라 상정하는 독일의 국경은 프로이센 시기에 통일되고 팽창하며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축소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동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과거에 고정된 영토를 현대 독일의 실체로 삼는다면, 그 사회를 제
나에게 는 미지수 같은 책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이 책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어린이들만이 자신이 진정으로 찾는 게 뭔지 안다’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오히려 가장 어른다웠을 때 이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른이 될수록 삶에 대한 확신보다는 고민이 더 늘어간다고 했다. 실제로 대학생이 된 나는 가장 어려운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해야 타인과 좋은 인연을 유지하고 삶을 적당히 잘 살아가는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 고민의 명쾌한 해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소설의 첫 문장이다. 분명 책을 읽을 당시에는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책장을 넘기는 순간 매번 겨울이 되곤 했다. 한강은 에서 5월 광주를 썼고, 이번 작품에서는 4월 제주를 썼다. 책의 주인공 소설가 ‘경하’는 화해할 수 없는 삶을 힘겹게 살아가는 도중에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목수인 ‘인선’의 전화를 받는다. ‘지금 와줄 수 있어?’ 찾아간 곳은 병원, 손가락이 절단되었다고 말한다. ‘인선’은 의외의 부탁을 하는데, 손가락이 절단되어 앵무새에게 물을 줄 수가 없으니 당장 제주 집으로 가달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