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고 편안한 아포칼립스 이야기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혹자는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럼 아포칼립스가 아니지 않아?’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아포칼립스 문학으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다소 애매한 고민이 따른다. 아포칼립스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전염병 플롯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아포칼립스 상황처럼 생존자들이 큰 시련을 겪지도 않고, 생존자 집단을 위협하는 악인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 기껏해야 잠에 드는 정도다.

수면 바이러스가 퍼진 소설 속 세계에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기약 없는 수면에 빠진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도 언제 병에 걸릴지 몰라 집 안에서 나오기를 주저한다. 사람들이 재난 상황에서 행동하기를 주저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도전적인 누군가는 반드시 집 밖을 나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포칼립스에서 자주 사용하는 이러한 전형을 사용하지 않는 게 바로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제목을 보고 예상할 수 있듯이, 멸망 직전의 세계를 살아가는 주체들은 모두 소심한 사람이다. 활발한 사람들은 이미 바이러스에 걸려 잠들었다. 독자가 주목할 건, 소심한 사람들이 아포칼립스 상황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다. 그들은 딱히 위험한 상황에 부딪히진 않는다. 소심한 사람들은 행동하기 전에 온갖 생각과 고민을 하지만, 그러한 시간들이 행동을 해야 한다는 확신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그들은 행동도 조심스럽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발생하지 않는 위기 상황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겐 최대 갈등이다. 물론 이것도 갈등으로 칠 수 있다면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전형적인 아포칼립스 플롯을 사용하지 않는 소설이라는 말은 이런 뜻이었다. 소심한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평화롭고, 그들끼리 어울려 보내는 시간 역시 화기애애하기만 하다. 갈등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아포칼립스 문학이라니. 흥미롭지만 걱정되었던 건 사실이다. 과연 재미가 있을까?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은 필자는 확언할 수 있다. 정말 재밌다고. 필자가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재밌다고 느낀 걸 수도 있다. 책에 묘사된, 소심한 사람들의 소심한 행동을 텍스트로만 봐도 너무 공감되어서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는데 인사를 받은 사람이 더 놀라는 모습이나, 오늘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생각에 자기 전에 자기반성 타임을 갖는다거나. ‘다른 사람이 본 내 모습도 이럴까?’ 하고 필자 역시 소심한 사람답게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심한 사람들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세상이 멸망하고 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는 최근 큰 유행인 MBTI(성격유형검사)에서 흔히 ‘내향형이라 불리는 ‘I’ 유형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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