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표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표지.

나에게 <어린 왕자>는 미지수 같은 책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이 책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어린이들만이 자신이 진정으로 찾는 게 뭔지 안다’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오히려 가장 어른다웠을 때 이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른이 될수록 삶에 대한 확신보다는 고민이 더 늘어간다고 했다. 실제로 대학생이 된 나는 가장 어려운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해야 타인과 좋은 인연을 유지하고 삶을 적당히 잘 살아가는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 고민의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읽게 된 <어린 왕자>는 뜬금없이 나에게 어린이가 되어보라는 제안을 던졌다.

어린 왕자는 미성숙해 보이는 아이이다. 그러나 어린 왕자가 ‘점등인, 사업가, 술주정뱅이 등’ 별에 사는 어른들에게 던지는 말들을 살펴보면 절대 어리숙하지만은 않다. 어린 왕자는 의미 없이 일과를 반복하고 지식인처럼 보이려는 어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어른들은 한때 자신이 꿈 많은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잊는다. 나 역시도 그랬다. 어른이 되면 세상이 변하기라도 하듯이, 이전과 다르게 성숙하게 행동해야 하며 터무니없는 꿈보다도 현실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발 물러서서 나를 바라보면 지금도 난 여전히 ‘미완성’ 상태이다. 원래 인간은 평생에 걸쳐 성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언제나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난 서로에게 행복만을 주는 관계가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행복함, 슬픔, 분노, 벅참과 같은 솔직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주고받는 관계가 더 좋았었다. 마치 어린 왕자와 그의 장미 관계처럼 말이다. 관계 속에서 상대방과 내가 모두 솔직해지는 것. 그로 인해 완벽해 보이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더욱 순수하고 애정 어린 사람으로 남아야 좋은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계의 균열로 인해 받게 되는 상처까지도 결국에는 서로를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어린 왕자는 미완성 속에 놓여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장미를 사랑하는 것’ ‘쉬고 싶으면 마음껏 걷는 것’은 타인이 봤을 때는 터무니없는 가치일 수도 있지만, 어린 왕자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삶의 의미일 수 있다. <어린 왕자>에 실려 있는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 그림은 이제 너무나 유명해서 모든 사람이 그 숨은 의미를 알고 있다. 이렇게 그 의미가 널리 퍼졌을 때, 오히려 어린 왕자가 강조했던 ‘자신만의 의미’는 상실되었다. 그래서 나는 정답보다는 나만의 가치를 찾으려 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완성도 하나의 예술이 되듯이, 나만의 가치들로 삶을 채워가는 것은 훨씬 다채로운 ‘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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