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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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귀중히 여기는 마음, 때로는 희생하는 마음처럼 말이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art’, 그러니까 하나의 기술로 보았다.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술을 터득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프롬이 말하는 이 기술로서의 사랑, 그리고 사랑을 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엇일까?

사랑의 기술이라고 해서 누군가를 유혹하고 연애의 고수가 되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로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객관성’이다. 사랑처럼 모호하고, 주관적이고, 심지어 개인마다 시각과 관점이 천차만별인 특성에 필요한 기술이 객관성이라는 프롬의 주장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프롬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능력 맥락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프롬은 사랑의 능력 중에서 중요한 성질 즉, 사랑을 성취하는데 중요한 조건은 ‘자아도취’를 극복하고 ‘객관성’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아도취는 흔히 통용되는 개념처럼 스스로에게 황홀하게 빠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견해나 시야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 자신의 관점과 기준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자아도취’의 반대 극에 ‘객관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아도취는 현실 왜곡을 겪게 하여 객관성 결여를 초래하고, 이러한 자아도취의 극복이 사랑의 성취 조건이라는 점을 미루어보아 궁극적으로 객관성은 사랑의 필수 조건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대체로 프롬의 주장에 동의하나 나는 객관성의 결여가 연인 관계에서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흔히 연인들이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면 소위 ‘콩깍지가 꼈다’라고 할 만큼 객관성이 결여된다. 현실과는 다르게 밥을 게걸스럽게 먹어도 복스러워 보이고, 실수가 한심하지 않고 귀여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연인의 사랑스럽지 못한 행위도 콩깍지라는 객관성 결여와 자아도취에 빠진 상태에선 용인이 되는 것이다. 콩깍지가 씌인 사랑이 진짜 사랑이 아닐지언정 나는 연인 관계의 지속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만약 콩깍지가 벗겨졌는데도 상대를 향한 사랑이 여전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다양한 사랑을 해 나가지만 이 과정에서 내가 옳다는 자아도취로 상대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진 않았는지, 혹은 상대의 행동과 의도를 현실과는 다르게 내 멋대로 왜곡해서 받아들인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프롬의 말처럼 자아도취 극복을 통해 객관성을 함양하는 것이 진짜 사랑으로 향하는 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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