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책 표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책 표지.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분명 책을 읽을 당시에는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책장을 넘기는 순간 매번 겨울이 되곤 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5월 광주를 썼고, 이번 작품에서는 4월 제주를 썼다. 책의 주인공 소설가 ‘경하’는 화해할 수 없는 삶을 힘겹게 살아가는 도중에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목수인 ‘인선’의 전화를 받는다. ‘지금 와줄 수 있어?’ 찾아간 곳은 병원, 손가락이 절단되었다고 말한다. ‘인선’은 의외의 부탁을 하는데, 손가락이 절단되어 앵무새에게 물을 줄 수가 없으니 당장 제주 집으로 가달라는 것. ‘인선’의 기이한 부탁에 ‘경하’는 그날 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제주로 향한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유골 수백 구가 묻힌 구덩이가 맥락도 설명도 없이" 놓여있던 제주 4.3사건을 그곳에서 처음 만난다.

한강은 제 몸을 깎아 글을 쓰는 것만 같다. 언제나 우리를 대신하여 작별하지 않을, 작별해서는 안 될 기억을 자신만의 문장으로 써낸다. 책을 읽는 내내 시렸고, 고통과 의문이 가득했다. 그들이 말하는 ‘절멸’의 이유와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의 아픔, 그 위에 쌓인 눈의 무게, 죽은 딸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기 위해 사방을 뒤진 ‘엄마’의 마음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강은 이것이 지극히 사랑에 대한 소설이길 빈다고 말했다.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p.311) 나는 이 사랑을 온전히 이해했는가를 되묻는다. 나도, 이 책을 읽을 다른 이들도 언젠가 그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작별하지 않을 때, 삶은 기어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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