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배크만의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표지.
프레드릭 배크만의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표지.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라는 게 쉽지 않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내면 깊이 받아들이는 일은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거나 생전 흔적을 미리 정리하는 일과는 전연 다른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준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하여 아픔 없는 작별이 가능하다면.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슬픔을 어루만지고 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머리로는 더 이상 기억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자 노아에게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죽기도 전에 이별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할아버지와 노아는 조금 특별한 예행연습을 시작한다.

“그 몇 초 동안 우주를 떠돌면서 눈을 깜빡이고 비벼가며 몇 단계를 거쳐 내가 누구이고, 거기는 어디인지 기억해 내는 거야. 그런데 우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매일 아침마다 점점 길어진단다. 할아버지는 지금 넓고 잔잔한 호수를 떠다니고 있어, 노아노아야.”

이 책은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이와 그를 배웅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인생이라는 기다란 필름 위로 시공간이 비틀리고, 과거의 분노가 터져 나오고,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는데 어떤 것들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할아버지는 노아와 다른 시간을 거닐며 인생에서 가장 선명했던 구간을 반복 재생한다. 노아는 그런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두려움을 달랜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해주었듯이.

“무서워 마세요.”

할아버지와 노아의 잔잔한 이야기는 이별이 두려운 사람에겐 용기를, 이미 지독히 슬픈 이별을 겪은 사람에겐 위로를 건넨다. 이렇게 무섭고 아픈 이유는 아직 작별하는 법을 배우지 않아서 그렇다고, 부드러운 손길로 생경한 현실의 아픔을 치유해 주는 듯하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열여덟 여름의 나는 오래도록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 한 권을 뽑으라 한다면 이 책을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누군갈 떠나보낸 뒤 깊은 후유증을 겪는 중이었지만, 앞으로의 수많은 작별에는 이 책이 진통제가 되어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스물셋이 된 지금, 다시 읽어도 그 감상은 변하지 않았다. 평생을 들여다보게 될 책이라면 아마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언젠간 이 땅에서 이별을 주고받아야 하는 여행가다. 사랑하는 이가 별의 원자로 돌아갈 때조차 꿋꿋이 살아내야 하는 쓸쓸한 운명, 누구도 이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중력 훈련을 하는 우주비행사처럼 우리도 살 수 없는 환경에서 둥둥 떠다니는 연습이 필요한 게 아닐까. 반드시 이별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면 아픔 없이 왔다 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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