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경험은 사람의 인생에 뿌리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학대를 받고 자랐는지, 아니면 무관심 속에 자랐는지. <모노톤 하트>에 수록된 <슈리쥴리 스크램블>과 <백희>는 어릴 적의 트라우마로 인해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인간의 두 가지 전형을 통해 우리에게 ‘성장’과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슈리쥴리 스크램블> 세계에는 ‘슈리쥴리’라고 불리는 가상의 생명체가 존재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체동물인 블루드래곤이 연상되는 신비로운 생김새에 인기 만점인 인공생명체. 심지어 주인의 과잉된 감정을 먹어 심리 상태를 안정시켜주는 습성까지 있다. 그러나 이런 슈리쥴리에게도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먹은 감정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해찬’의 슈리쥴리는 ‘고집 세고 우울한’ 색을 가지고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중학교 친구들은 이를 소문내고 다녔고, 주인공은 고등학생 때까지 제대로 된 교우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포기하지 않고 대학에서라도 새로운 교우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힘쓴다. 안타까운 점은, 이미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인간관계를 만들지 못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법마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력하는 자를 알아주는 사람은 있는 법. 그런 주인공의 노력을 알고 다가와 준 ‘이연’과 함께 우연히 ‘슈리쥴리 지킴이’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다양한 색깔의 슈리쥴리를 가진 사람들과 끈끈한 마음을 나누며 ‘해찬’은 점차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좌충우돌 사건들을 헤쳐 나간 해찬은 신뢰받는 한 명의 어른이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해찬은 ‘신뢰받지만 자신은 신뢰할 사람이 없는’ 인물로 변모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성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백희>의 주인공 ‘소희’는 해찬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냉소적이었던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새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않는다. 새어머니가 감옥에 가게 되자 혼자 남겨진 주인공. 주인공은 우연히 ‘천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채팅방을 발견한다. 그녀는 그것이 자살을 암시하는 것임을 알아채고 그곳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난 ‘윤우’ 역시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다. 어릴 적 사이비 종교에 빠진 부모님이 동생을 데리고 눈앞에서 자살한 후, 그는 무척이나 불안정한 사람으로 컸다. 그런 ‘윤우’에게 나타난 ‘소희’는 자신과 일견 비슷하면서도 다른, 불안정하지 않은 인물처럼 비쳤을 것이다. ‘윤우’는 ‘소희’가 자신을 떠나지 않길 바라며 ‘소희’에게 집착하게 되고, 소희 역시 그것을 밀어내지 않는다. 그녀 역시 자신을 떠나지 않는 ‘무언가’에, ‘윤우’에 집착하는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서로가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관계. 자신 외의 무언가에 신경 팔리지 않기를 바라고, 자신 외의 무언가에서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더욱 매달리게 하기 위해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려 한다. 이런 집착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서로를 불행에 빠뜨리려 하는 관계. 이 모순적인 관계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관계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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