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연두 사설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저항권에서 비롯된 촛불 민심에 즈음하여 향후 도래할 ‘대전환의 시대’를 예고하였다. 예상대로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헌법 수호의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였다. 그런 점에서 국민 저항권의 근거가 ‘국민 기본권’과 ‘헌법 수호를 위한 수단’으로 해석되는 데에는 충분한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37년 전 5월 그때도 우리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저항권을 분연히 행사하였지만 폭력적인 공권력은 우리의 기본권을 무참히 유린하고, 오랫동안 진실을 왜곡하였다. 반면 헌법이 보장한 절차에 따라 지난해부터 평화적으로 진행된 일련의 정국은 온전히 국민이 주체가 되어 쟁취한 역사적 전환이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5월 9일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참정권이 행사되어 우리는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와 우리 국민, 그리고 우리 대학이 직면한 현실은 결코 녹녹치 않다. 

전 세계적으로 민족적ㆍ인종적ㆍ종교적 배타주의와 보호무역주의는 가중되고 있으며, 영국의 브렉시트에 이어 프랑스 국민들은 EU 탈퇴를 공약으로 내건 젊은 대통령을 선택하였다. 특히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 당사국들은 소위 ‘마초 리더’로 불리는 유례없는 강성의 지도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이 와중에 남한의 새로운 정부에게 축포(?)라도 보내는 듯 북한은 탄도미사일 실험을 단행하여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국면을 환기시키고 있다. 산적한 국제 외교 문제뿐만 아니라 고도 지능형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하며 경제ㆍ문화ㆍ교육 등 사회 전 방위적인 변화와 혁신의 요구에 우리는 직면해 있다. 기초학문의 육성과 창의 융합형 인재의 양성, 그리고 지역 경제 발전을 선도할 거점 국립대학으로서 우리 전남대학교도 중요한 전환점 위에 서 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정부가 대통령 직속의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거점 국립대 집중 육성’을 공약으로 천명한 점은 고무적이다. 새 대통령이 내건 대학 교육 관련 공약을 일람하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금지, 국립대 총장 선출의 자율권 보장, 대입 제도의 단순화, 국공립대 공동운영체제, 거점 국립대 집중 육성, 반값 등록금 확대, 대학 기숙사 확대, 학자금 대출 이자부담 완화 등 실현된다면 상당히 긍정적인 내용들이 가득하지만, 표심을 고려한 공약 이면에 담긴 대학 스스로의 과감한 혁신과 구조조정이 전제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즉 지난 5월 2일 국무회의를 통해 ‘고등교육법 시행령’이 통과되었다. 이번 시행령은 이미 지난 해 12월 교육부가 제시한 학사제도 개선방안의 내용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학사제도 유연화(유연학기제, 집중이수제)’, ‘학습권 보장(융합전공제, 대학간 복수의 학위 허용)’, ‘시공간 제약 없는 이동ㆍ원격 수업 제공’, ‘석사과정의 수업 연한 단축과 졸업 요건 자율화’ 등이다. 이러한 학사제도의 적용은 기존 대학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정립하여 점차 학과의 벽도 허물고 융합 전공이 확대되는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불균형적인 경제 발전과 인구 감소, 그리고 과중한 수도권 집중화에 맞서 지역 거점 국립대로서 전남대학교가 그동안 고군분투해온 점은 사실이지만 한편 거점 국립대로서 변화에 둔감하며 안주해 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상의 시행령에 따라 개선된 새로운 학사제도의 적용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다. 건학 65주년을 돌아보고 다가오는 70주년 이후 제2의 건학을 위해서는 ‘변화와 혁신’은 교시에 가까운 명제가 되었다.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큰 격동기였던 춘추전국시대, 법가 계열의 종사(宗師)였던 한비자는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고금의 역사를 돌아보고 국가의 안위를 지키며 부국강병을 위해 반드시 견지해야 할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격변하는 시대에 조응하여 끊임없는 모색하는 자기 변화’임을 천명하여 이를 응형무궁(應形無窮)이라 하였다. 누구보다 한비자를 흠모하였던 진왕 영정은 지속적인 개혁과 변법(變法)을 추진하며 마침내 일통 제국의 위업을 이루었다. 물론 법가의 방식이 상도(常道)일 수만은 없고 모두가 제국을 지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를 능가하는 작금의 대전환의 시대에 응형무궁의 노력은 절실하며, 그것은 보편적인 자기 모색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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