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의 아젠다가 제시되었지만 구성원에게 감동과 기대를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전 10년 동안 대학의 구성원을 불안하고 피곤하게 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에 길들여지고 무기력했던 대학을 자유롭고 민주적인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이 아직은 실감나지 않는다.
정치권력은 지시 사항에 따르지 않으면 예산을 삭감하고 각종 사업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해 왔고, 우리 대학은 이에 “아니요.”라고 답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사업을 수주받기 위해 교육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을 피하고자 애썼다. 아니 앞서서 비위를 맞추기 위해 다른 대학보다 앞장서는 일도 적지 않았다. 교육부의 입맛에 맞게 온갖 제도가 새로 생겼다. 구성원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제도, 기업 논리에 의한 예산 편성, 비민주적인 의견 수렴 등은 대표적인 적폐라 할 수 있다.

사제 간의 만남조차 수치화 하는 제도는 자괴감을 들게 하였으며, 학문의 자유로운 소통은 예산부족이란 미명 아래 제한 받았다. 예산 절감을 위해 수강인원을 기준으로 폐강을 정하고, 교육부가 제시한 대학 평가의 지표를 올리기 위해 본부가 예산을 독점하였다. 대학의 가장 기초 단위인 학과는 예산이 부족해 개인 주머니를 털어야 할 때도 있었다. 대학 운영의 축이 점점 기업화 되어 왔던 것이다. 기업은 하향식으로 조직화 되어 있다. 상층부의 결정에 따라 하부가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조직 구조다. 하부의 창의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대학은 학과의 자율성과 창의성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발전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대학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한 것은 당장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 지식과 사유가 한 사회의 필수적 자양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한 사회의 지식과 사유의 생태계를 생각해 보라. 특정한 지식과 사유가 넘쳐나지만 필요한 지식과 사유가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최근 새 정부의 일꾼을 인선하는 과정을 보면 직책에 맞는 인재를 찾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국가의 책무를 수행할 역량 있는 인재의 부족 현상은 단지 도덕성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각 분야에 역량 있는 인재가 부족한 사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학은 단순히 지식만을 전수하는 곳이 아니다, 대학은 지식과 더불어 사유의 방법과 인생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장으로써 한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가 탄생하는 현장이다. 작금의 우리 대학은 대학 구성원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고 서로를 의심하고 위축되어 있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미래를 책임지는 역량 있는 인재가 나오기 힘들다. 인간은 상대가 자신을 신뢰할 때 창의성을 발휘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제도의 규율은 최소한의 것만을 규정한다. 최소 규정 속에서 유연하고 창발적인 지식과 사유는 탄생한다.

총장의 아젠다가 대학의 발전 동력이 되려면 먼저 구성원의 관심과 지지가 필수적이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관심을 가지고 의사를 표현할 때만 아젠다는 실천적인 힘이 된다. 대학의 구성원들을 그 동안 불안하고 피곤하게 했던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젠다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터전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 구성원이 잘 수행하고 있는 일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 기본이다. 새로운 변화는 기초적인 것을 버리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미래의 전망과 비전은 지금의 자산을 풍부하게 하고 적폐를 청산할 때 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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