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교육부는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였다. 개선안에 따르면 대학들은 자율적으로 다학기제, 융합(공유)전공, 이동·원격수업을 운영하는 유연한 학사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학들이 지속적으로 규제완화를 요구해온 탓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학사운영 시스템으로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시대’가 요구하는 핵심인력을 양성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학사운영의 자율성이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하는 대학들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이 개선안의 핵심은 대학의 학과제도에 대한 개혁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 특히 국립대학에서 학과는 학문적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우리나라 대학의 학사과정에는 선진국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학과들이 개설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학과간 칸막이도 매우 높다. 미국의 학부교육 시스템을 보면,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특정 학과에 소속하지 않고 입학하여 관심있는 교과를 이수한 후 졸업할 무렵에 전공을 인정받거나, 입학 당시와는 다른 학과의 전공을 이수해서 졸업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의 대학들은 학과 입학정원이 고정되어 있으며, 교수들은 정원을 1명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학과나 교육과정을 사유재산 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전과나 복수전공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이처럼 경직된 학과제도나 운영방식을 개선해 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도입된 실험대학제도, 2000년대에 도입된 학부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진국들에서는 잘 되는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실패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실패한 이유로 교수들은 전공교육의 부실화를 들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학과중심 지배체제의 위기에 대한 의식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학부제에 따른 최소전공학점제의 도입으로 다전공제도가 활성화되고, 융·복합교육이 활성화 될 것을 기대했으나 성과는 별로 없었다. 다전공을 독려하기는 커녕, 복수전공을 하려는 학생들을 곱지 않게 보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전공교육의 강화과정에서 학과간 칸막이 뿐만 아니라 교수간 칸막이가 점차 확대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영국의 교육사회학자인 번스타인의 이론에 비추어보면, 우리나라처럼 학과간·교수간 칸막이가 강한 학과제도하에서는 교수의 영향력이 막강하고 학생들의 학과나 교수에 대한 충성심이 강조된다. 학과의 내적 자율성은 강하지만 외부와의 교류가 약하고,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대학에서 교수의 갑질논란이 빚어진 것도 이러한 폐쇄적 구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폐쇄적 구조하에서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대학이 특정 직업을 준비하기 위한 학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탐구할 수 있는 기회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의 교수들은 아직도 20세기 초반의 학문분류에 기반 한 학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적폐(積弊) 청산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된 오늘,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적폐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학교육의 문제는 평가와 재정지원을 무기로 한 교육당국의 통제위주의 정책에만 기인하는 것일까? 우리 내부에서 기인하는 것은 없을까? 혹시 광복 이후 70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변화 없이 유지되어온 폐쇄적인 학과시스템이 우리 내부의 적폐는 아닐까? 언제까지 20세기의 교육시스템으로 학생들을 맞이할 것인가? 산업혁명이 근대적 교육제도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되었듯이 제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요구하게 될 터인데, 우리는 그러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변화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열린교육시스템을 준비하기 위한 대학사회의 성찰과 의지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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