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26년 중 그 사람(장광 분)의 모습.
대개의 사람들이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5·18민중항쟁의 아픔은 잊어야 할 무언가는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죽였고 누군가는 죽었다. 세월은 흘렀고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조금은 잊어버렸다.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면서 광장에 있던 탄흔도 지워졌다. 폭력을 주도하고 군림했던 사람이 자기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고통을 떠올리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러한 외면이 가해자의 자기변명이 되는 것 역시 께름칙한 일이다.

역사의 한 장면으로 5·18민중항쟁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광주정신에는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많다. 37년 전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지 않다. 광주정신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기는 한가. 그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이미 사라져버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 우리 안에 광주정신은 살아 숨 쉬고 있다. 국민들이 들어 올린 촛불이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탄핵을 만들었으며 19대 대선을 이끌었다. 나의 손으로 실현하는 소박한 정의. 나는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광주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26년’에서 사람들은 특별사면으로 풀려나는 전두환을 보며 “마피아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다”고 말한다. 마피아는 원래 시칠리아어로 ‘자랑’이라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의 뜻 과 별반 다르지 않다. 풀려나는 그의 모습은 자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회고록에서는 전두환 자신도 5·18민중항쟁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맹자는 의(義)의 단서로 수오지심을 말했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이 정의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광주정신에서 소외된 사람이자 소박한 정의를 품지 못한 까닭이다. 지난해 전일빌딩에서는 탄흔이 발견되면서 계엄군이 헬기에서 사격을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사실을 밝히는 것은 부끄러움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것은 그것이 의로운 일이며 소박한 정의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는 계엄군으로 투입되고 소녀를 사살하게 된다. 사고는 영호의 삶을 파괴하고 트라우마는 “나 돌아갈래.”를 외치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이어진다. 마지막 순간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던 영호는 사라지고 우리만 남는다.

영화 내내 기차는 달리고 현재는 여전하다. 박하사탕은 순수다. 5·18민중항쟁이 현재진행형인 까닭은 그 깨어지지 않은 순수를 지켜내는 것이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마냥 순수하게 간직하진 못할 것이다. 조금은 때 묻을지 모르고 흠집 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간직한다면 언젠가 우리에겐 그 달달함이 필요할 거다. 나 돌아갈래. 지난 과오를 되짚어 어쩌면 우리는 그들이 피땀 흘려 되돌려놓은 현재에 서있다.

광주정신이 무엇인가 물으면 나는 정의롭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광주정신은 그런 것이다. 37년 전 이야기니까 나에게는 익숙지 않다. 누군가의 부모님은 아팠을 테지만 우리도 우리 나름의 고통이 있으니까.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렇게 소박한 정의를 품고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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