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올 여름 무더위 잘 버티셨습니다. 함께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엊그제 8월 11일이 말복이었습니다. 말~~~복 많이 받으세요. 당연히 末伏(복날)에서 伏(복)이 福(복)은 아니 것은 아시죠? 왜 복날에 伏자를 썼을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사람(人) + 개(犬)의 조합입니다. 伏(복)은 엎드릴 복자입니다. 굴복 혹은 순종의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순종적인 가축은 개여서 그럴까요? 이 무더위에 힘쓰지 말고 개처럼 엎드려 쉬라는 메시지일까요? 복날에 개를 찾는 것은 아마도 伏자에 개(犬)가 들어가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더위로 진을 다 뺀 뒤, 여름철 영양보충으로 집에서 키운 개는 제격이다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름에만 진을 빼는 계절이 아니라 춥디추운 한 겨울철 움츠리는 그 시절이 있습니다. 바로 동지를 지나 대한을 전후한 시절입니다. 가장 추울 때입니다. 대한은 음력 12월 25일 전후에 있습니다. 이때 중 어느 하루를 택해 ‘납일’로 삼아 연말행사를 거창하게 지냈습니다. 국가적 행사였고, 왕실의 행사였으며, 온 나라 사람들의 잔치였습니다. 납일에는 사냥이 허용되었습니다. 납일에 잘 알려진 음식은 꿩과 산토끼를 잡아 푹 고아 놓은 납평전골이 있고, 사냥한 참새고기나 멧돼지 고기가 유명했습니다. 호남지역에서는 납일에 엿을 고았다고 하여, 이때 먹었던 엿을 ‘납일 엿’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복날과 납일은 이미 선진시대부터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여름철 복날은 하지와 관련이 있으며, 겨울철 납일은 동지를 기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복날과 납일은 시간과 관련성이 큽니다.
갑·을·병·정·무·기·경(庚)·신·임·계 → 天干입니다. 한 여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 때를 24절기상 ‘하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천간의 ‘경(庚)’은 오행 중 금(金)에 해당합니다. 여름의 기운(火)으로 금(金)을 녹이는 시절을 택해 복날로 삼았습니다. 이열치열인 게죠. 바로 하지를 지나 세 번째 庚日(경일)을 초복이라고 하고, 하지 지나 네 번째 庚日을 중복이라고 합니다. 복날은 숫자 날짜로 정해진 절일이 아닙니다.

언뜻 보기에 하지가 가장 더울 것 같지만, 자연의 질서는 하지를 지나 3주 정도가 되어야 무지 더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더위가 더위답죠. 보통 체감 온도라는 것이 있듯이 옛 사람들도 이 체감온도를 느꼈습니다. 하지가 지나 3주 정도 지나면 무척 무덥다고 생각한 거죠. 실제로도 이때부터 덥습니다. 그리고 초복이 지나 10일 후에 중복이 됩니다. 올해 하지는 6월 21일이고, 초복은 이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인 7월 12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10일 후인 7월 22일이 중복입니다.

그런데 중복이 지나 10일 후가 말복이 아니라, 입추 후 첫 번째 庚日이 말복이 됩니다. 올 입추는 8월 7일이었습니다. 이로부터 첫 번째 庚日이 8월 11일 바로 말복입니다. 입추가 지나면, 가을 같아야 하는데, 입추 지나도 날씨가 가을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도 체감온도를 짐작해 입추 지나고도 그 무더위가 계속 이어진다고 봤습니다. 말복이 지나고 처서가 되어서야 아침저녁으로 좀 선선해집니다. 올해 처서는 8월 23일입니다. 이처럼 복날은 하지를 기준해 天干(천간)에 따라 정해진 날입니다.

이에 반해 동지를 기준해 地支(지지)에 따라 정해진 날이 납일입니다. 동지를 기준해 각 왕조별로 정해진 오행의 덕에 따라 납일의 날짜를 선택했습니다. 대략 그 시기는 대한을 전후에 있으므로 음력 12월 25일을 전후합니다. 납일도 수천 년간 이어진 연말 행사였지만 지금은 사라진 절일입니다. 왕조가 사라지고, 서양의 달력이 들어오면서 서양력에 익숙해짐에 따라 음력 12월 25일을 전후한 납일은 자연스럽게 양력 12월 25일 행사인 서양의 절일인 크리스마스로 대체되었습니다.

복날과 납일은 자연의 시간 질서를 체감해 냄으로써 만들어낸 하지와 동지를 기준한 우리 조상들의 시간 질서였습니다. 
전남대 사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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