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소설 ‘어셔가의 몰락’ 에서는 단순한 사물들과 풍경의 어떤 특정 부분에 다른 세부 사항이 배치되고 어우러지며 화자와 독자에게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평범한 이미지들이 서로 다르게 엮이며 만들어내는 공포의 감정은 다른 공포의 감정을 이끌고 더 강한 공포의 감정을 만든다. 어셔와 그의 쌍둥이 여동생 메들라인의 죽음에서 만나게 되는 충격적인 공포는 어셔가의 저택이 풍기는 분위기와 사물, 풍경의 다양한 배치에 의해 이미 진행된 공포이다. 최종 결론보다 우울과 불안이 더욱 공포에 빠져들게 한 것이다.12월은 한
이 병장 및 가해자들에게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구타 및 가혹행위를 당한 윤 일병은 지속적인 폭행이 가해졌을 때 생기는 좌멸 증후군과 속발성 쇼크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가해자들에게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확정할 정도로 의심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라며 살인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상해치사죄를 인정하였다. 세월호 사건의 경우, 476명의 승객을 세월호에 방치하고 달아난 이준석 선장에게 “승객들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인식을 넘어 이를 용인하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살인죄에 대해 무
흔히 여행을 하다 보면, 시차 적응을 못해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했을 때 일이다. 지금의 세계시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한다. 이것은 세계가 그렇게 하자고 약속한 것이다. ‘時差’란 그리니치 평균시와 특정 지역의 표준시의 차이 또는 지역 사이의 표준시의 차이를 말한다. 기준이 되는 지역보다 동쪽의 지역은 시각이 더 빨라 시차는 +가 된다. 한국표준시는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한 세계시보다 9시간 빠르므로 시차는 +9시가 된다.?또, 미국 동부표준시는 세계시에 대해 시차가 -5시이다.?따라서 한국표준시와 미국 동부표준시의 시
현재 전남대는 전 세계적으로 여러 분야를 공부하는 이슬람 문화의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전남대에 등록된 이슬람 학생들은 100명 정도지만 현실적으로 이보다 4배는 더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전남대에서 공부하는 이슬람 문화 학생들에게 대해서 관심 가져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학생들은 우리 대학에서 매일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보면, 매주 금요일마다 이슬람 학생들은 오후 12:30~14:00까지 방에 모여서 기도를 합니다. 여기에서는 시외나 또는 다른 나라에서 전남대에서 공부하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어느 저녁 친구들과의 술자리의 주제였다. 언제나처럼 실없는 농담이 몇 마디 오가고 가끔 소식을 듣는 동창들의 새로운 근황이 이어졌다. 누구는 오랜 기다림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누구는 이직을 했는데 월급이 꽤 올랐다 등 우리의 현재 관심사와 연결된 소식들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졌던 A가 화제로 떠올랐다. 사업에 성공해 상당한 부를 쌓았고 동창들 중 아마 가장 자수성가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모두의 짧은 부러움과 찬사 뒤에 A와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는 B가 마치 자기 것이 될
필자는 지난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또 세월호 얘기를 하냐며 이 글을 넘긴다면, 당신 역시 국가 폭력·선동의 희생자인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부가 ‘해야 할 일’과 부담해야 할 ‘책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횡령·배임을 한 유병언과 청해진해운 임원진 그리고 구조의무를 해태한 세월호 선원들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다. 비록 유병언은 시체만 찾았을 뿐이지만 청해진해운 임원진과 세월호 선원을 구속기소하여 형사재판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시간’이 멈춰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시간이 멈춘다면 ‘존재’이라는 명제는 사라질 것이다. “인간의 존재는 시간 속에서 증명되며, 그 시간이 분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은 인류 기원부터 축적돼 온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기 때문”라는 어느 신문의 기사는 존재와 시간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좀 더 용이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시간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 어바웃 타임, 시간 여행자의 아내 등 많은 영화들이 시간을 소재로 하였다. 왜 우리는 이처럼 시간에 예민할 것일까?
온통 죽음이, 여러 명의 ‘목숨이 끊어졌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어떤 참사가, 아니 미필적 고의에 의한 집단 학살이라고 해야 할 재앙이 온 사회를 검게 뒤덮었던 날들이 흘러가고 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술이라도 취해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벌놈아 비겁한 놈아’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가도, ‘모두 병 들었는데 나만 아프지 않아서’ 고개 떨구기를 반복했던 날들이었다. 그러다가 세월호 사고 후 며칠 동안 어느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고, 무기력했으며 무능했던 정치인들이 다시 확성기와 현수막을 들고 ‘국민 안전’이
‘S=vt’, 중학교 때 물리책에서 외워야 했던 거리를 구하는 공식이다. 거리는 속도와 시간에 비례하다. 스티븐 호킹은 “사건이란 공간성의 한 지점과 시간상의 특정 시점에서 일어난 무엇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길이보다 시간을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거리를 엄밀하게 측정하는 데 바로 이 시간을 이용한다. 실제로 1미터는 빛이 세슘 원자시계로 측정했을 때 0.000000003335640952초 동안 달린 거리로 정해진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광초(light-second)라고 부르는 더 편리하고 새로운 길이의 단
세월호는 침몰했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부실한 국가재난시스템, 정부의 보도지침만 받아쓰는 언론과 이윤에 눈이 먼 기업, 그리고 어른들의 무책임한 사고방식 등 총체적 난국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필자는 그 중에서도 ‘무능한 정부’에 책임을 묻고 싶다. 사건·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피해자를 구조하고 사건을 수습하느냐이다. 한 나라의 국격은 G20정상회의, 동계올림픽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얼마나 보호할 수 있는가에서 드러난다.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를 비롯한 수많은
한국에 처음 도착해서 갖게 된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생각과 관련 있는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선진국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산업혁명 이후 적어도 100~150년 정도 걸린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분석이다. 예외적인 경우가 한국이며, 세계는 지난 50년 동안 한국이 이뤄낸 경험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20세기를 시작하는 즈음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현재에도 서울이나 다른 여러 곳에서 기차역 등과 같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남아있다. 비록 한국의 국민들은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은 2002년에 발간된 이해인 수녀의 수필집 제목입니다. 자연을 벗 삼아 수도생활을 하는 수도자답게 그녀는 일상에서 길어 올린 소소한 기쁨과 깨달음을 고운 빛깔의 언어에 담았습니다. 그녀의 글을 읽노라면 고요한 뜰에 앉아 마당을 뒹구는 햇살과 엎드린 장독대와 웅크려 일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는듯한 기분이 듭니다. 늘 그렇듯이 마음이 따뜻해지면 있어야 할 곳에 꼭 있어야 할 풍경들을 그녀는 어김없이 불러내 앉혀 놓곤 합니다. 사실 그녀는 ‘말로 향기를 전하는 꽃’인지 모릅니다.우리 대학 교정에서도 향기로
역사학 연구가 정치ㆍ경제와 협의의 사회에 한정되어 연구됨으로 인해 역사학의 빈곤화가 초래되었다는 인식에 일부 동의하며, 역사 연구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견해에 찬성한다. 역사는 다원적인 구조와 거기에 편입된 다양한 인자들에 의해 쫌쫌히 채워져 있어야 한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과학사를 접하였다. 특히 고대인들의 시간에 대한 인식에 흥미를 가졌다. 장구한 경험에서 물리적인 패턴을 찾고자 하였던 노력과 인류의 정신사적인 사유관념은 시간이라는 질서 체계로 응집되어 나타난다. '시간의 지도: 달력'의 저자 E.G.리처즈는 "달력은 추
필자는 학부시절, 개강일에 스스로에게 목표했던 방학계획을 실천했는가를 묻기 전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청춘의 한 자락에 추억을 남겼는지 되돌아보곤 했다. 목표달성도 하지 못 하고 추억도 남기지 못한 채 덧없이 방학을 보낸 좌절감이 익숙한 것을 보면 딱히 건실하게 방학을 보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먼 길을 돌아가지만 조금씩 위로 향해 올라가는 나선처럼 그런 시간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든 것임에는 틀림없다. 지난 겨울, 대한민국도 방황하는 청춘인 우리만큼이나 참 먼 길을 돌아갔다. 하지만 분명히 위로 향하고 있음을
가로지르기와 탈주, 해방적 파국과 창조적 파괴 따위와 관련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포괄할 만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제목이라는 이름으로 할당된 공간에 쓰윽쓰윽 펜 질을 했더니, 제법 그럴싸한 제목이 나왔다. 제목으로써 글은 파멸했지만 제목 자체는 글에서 해방되었고, 제목의 공간과 형태는 새롭게 창조되었다. 그랬다. 나는 이것을 말하고 싶었다.때마침 전남대에서 이런 고민과 맞닿아 있는 퍼포먼스가 지난 12월 6일에 있었다. 아티스트 안나 리스폴리(Anna Rispoli)는 전남대 기숙사 600여 명의
우리는 이제껏 많은 그들을 보아왔고, 나 자신이 그들에 속에서 살아가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 안에 다른 그들을 만들어 그들을 자신과 구별 짓거나 적대시하기도 한다. 그들이 무엇이건 간에, 나란 존재에는 이미 수많은 그들이 나를 설명하는 정체성으로 새겨져 있다. 소규모 그룹부터 가족, 학교, 지역, 국가, 계급, 계층 등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느 순간 그들에 속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들과 내가 완전한 등식관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들 속의 그들이 서로 일체가 되어 있는 것 역시 아니
역사는 그것을 서술하는 역사가의 사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것은 가까운 시기의 역사를 서술할수록 현재의 조건들이 영향을 미치면서 그 차이가 심화되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복잡한 근현대사를 거쳐 오늘날 서로 다른 이념체제를 바탕으로 분단국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현대사 교과서 서술이 얼마나 중요하면서 어려운 사안
우리 대학 총학생회는 지난달 24일부터 3일간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총투표를 진행했다. 총투표에는 총유권자 1만4천996명 가운데 4천3명이 투표에 참여해 최종 투표율은 26.69%로 나타났다. 총투표 결과에 대한 해석으로 우리 대학 학생들의 정치 무관심을 탓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우리는 적어도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이 드러난 이후의 국정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불화와 마주한다. 굳이 내가 겪지 않더라도 “남자친구와 싸웠다”, “직장동료와 사이가 안 좋다”, “고부갈등이 심각하다” 는 식의 이야기를 주변 지인으로부터 듣기도 하고, ‘그들’ 혹은 특정한 이념이나 사상이 지배적인 관념과 불화하는 모습을 뉴스를
명절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흔히 요즘 세대는 ‘3포세대’라고 불린다. ‘3포세대’는 취업난으로 인해 연애,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했다는 의미의 ‘신조어’이다. 그런데 이러한 ‘3포세대’가 포기하는 또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