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장 및 가해자들에게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구타 및 가혹행위를 당한 윤 일병은 지속적인 폭행이 가해졌을 때 생기는 좌멸 증후군과 속발성 쇼크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가해자들에게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확정할 정도로 의심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라며 살인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상해치사죄를 인정하였다.

세월호 사건의 경우, 476명의 승객을 세월호에 방치하고 달아난 이준석 선장에게 “승객들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인식을 넘어 이를 용인하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살인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반해 20대 청년이 집에 들어온 도둑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도둑이 충격으로 뇌사 상태에 빠진 사건의 경우, 재판부는 청년의 행동은 방어행위의 한도를 넘은 것으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러한 판결들을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범행 당시 이 병장 및 가해자들과 이준석 선장이 피해자들에게 한 행동은, 살인으로 볼 수밖에 없을 만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인면수심의 범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둑과 맞서 싸운 행동이 왜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지, 왜 빨래 건조대가 흉기가 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국민의 법감정과 괴리가 있는 법원의 판결은 항상 논란이 된다. 특히 사회적 관심을 받는 형사재판의 경우 ‘죄의 성립’과 ‘양형’에 대하여 비판이 쏟아진다. 법리는 ‘원칙’을 강조하고, 법감정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덕률’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법학도이지만 법감정과 법리의 사이에 무엇이 정답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법리에 따라 이 병장과 이준석 선장에게 살인죄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각각 선고할 수 있는 최대 징역인 45년 및 36년을 선고했다. 도둑 뇌사 사건의 경우에도 법조계는 정당방위는 원칙에 대한 예외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고, 만일 법리를 도외시하고 선처할 경우 정당방위를 빙자한 보복행위가 만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재판부 역시 이와 같은 입장이지만 폭력행위처벌법 위반죄(집단·흉기등상해)의 최하한인 징역 3년에서 작량감경하여 1년 6개월로 낮추는 등 법관에게 주어진 범위 내에서 선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죄의 성립 및 양형은 법관의 고유한 권한이자 책임영역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여야 하는 법관으로서는 여론을 의식하여 판결을 내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형사재판의 목적은 책임의 정당한 구현에 있다. 이러한 정당한 책임은 국민의 건전한 상식과 신뢰를 떠나 논의할 수 없다.
 
즉 사법수요자인 국민의 법감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국민들에게 형사재판은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판결이 국민의 눈높이와 괴리가 계속되는 경우 정의가 무엇인지 혼란이 오게 되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팽배해질 것이다. 법리와 법감정은 일치하지 않을 것 같지만 법리가 법감정을 설득하기도 하고, 법감정이 법리를 바꾸기도 한다. 판결은 법리와 법감정이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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