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처음 도착해서 갖게 된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생각과 관련 있는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선진국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산업혁명 이후 적어도 100~150년 정도 걸린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분석이다. 예외적인 경우가 한국이며, 세계는 지난 50년 동안 한국이 이뤄낸 경험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20세기를 시작하는 즈음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현재에도 서울이나 다른 여러 곳에서 기차역 등과 같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남아있다. 비록 한국의 국민들은 일제 강점기 시대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자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 당시 일본의 기술과 산업혁명이 한국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고도 생각한다. 지난 50년 동안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국은 가난한 나라에서 자동차, 선박, 전자산업 등 다양한 분야를 기반으로 부강한 나라로 변화하였다.

한국정부는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급속하게 발전을 진행시켜 왔다. 신속하고 극적인 건설은 결과적으로 유사한 건물들과 반복적인 지역 구조를 가진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다. 지역관계자들은 자신의 임무를 시간 내에 완수하기 위해서 기존의 프로젝트를 모방했고, 이러한 정책들의 신속한 실행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창의적인 혁신의 기회 저하로 인하여 도시적인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다. 한국은 특유의 아름다운 자연과 뚜렷한 사계절이라는 기후적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의 단조로운 건축 환경 때문에 권태로움을 느낌을 준다. 내가 광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단조롭고 유사한 건축 환경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광주에 도착하여 첫째 날, 물건을 사기위해 홈플러스에 갈 일이 생겼다. 나는 다시 돌아올 때를 생각해 문 옆 파란색 표지판에 적혀있는 주소를 적었다. 가족과 함께 택시를 타고 “홈플러스”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매우 쉽게 그곳에 갈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다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쇼핑 후 택시를 타고 적어놓은 주소를 보여줬을 때 그녀(택시운전기사)는 주소의 위치를 알지 못했고 택시에서 내려야 했다. 다른 택시를 세워 또다시 주소를 보여주었지만 다른 택시운전기사 또한 주소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 그때 그가 나에게 한국어로 말을 했지만 나는 몇 개의 단어를 제외하고 알아듣지 못했다. 나와 내 가족은 길을 잃었고 나는 영어로 설명해줄 누군가를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 그 후 오는 동안 보았던 건물들을 기억해내려고 노력했지만 불행히도 건물이나 교량 등이 모두 비슷했고 결국 어디에도 나를 집으로 안내해줄 랜드마크는 존재하지 않았다. 택시기사에게 경찰서로 가길 요청했지만 그는 그곳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나는 종이와 펜을 가지고 전남대학교를 사각형으로 표시해 그 곳을 중심으로 주위를 한참 설명하고 나서야 마침내 집으로 올 수 있었다. 비슷비슷한 건축물과 도로의 모양 그리고 언어 때문에 나는 2,500원이면 되는 거리를 15,000원의 요금을 지불하게 되었고 택시 안의 내 가족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며칠 후 전남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하였을 때, 거기서 나는 건물만이 아니라 한국의 언어와 선생님들의 체형, 머리스타일, 옷차림 등이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유사성은 내가 3명이라고 생각하게 했던 한국어선생님들이 한 장소에서 있을 때 4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내가 걸어가고 있을 때 만난 선생님들에게 4번의 인사를 했고, 그중 3명은 한국어선생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이것을 알았을 때 나는 어이가 없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이러한 단조로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한 건축공모전 등의 개최를 장려하고 있다. 나는 지금이 삶의 질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곳의 도시 환경을 변화시켜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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