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어느 저녁 친구들과의 술자리의 주제였다. 언제나처럼 실없는 농담이 몇 마디 오가고 가끔 소식을 듣는 동창들의 새로운 근황이 이어졌다. 누구는 오랜 기다림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누구는 이직을 했는데 월급이 꽤 올랐다 등 우리의 현재 관심사와 연결된 소식들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졌던 A가 화제로 떠올랐다. 사업에 성공해 상당한 부를 쌓았고 동창들 중 아마 가장 자수성가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모두의 짧은 부러움과 찬사 뒤에 A와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는 B가 마치 자기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을 A에게 빼앗겨 아쉽다는 듯이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나이에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A가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살아 왔을지 그 업계의 생리를 잘 아는 자기로서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A에 대한 나의 기억은 버스를 세 번 타고 와야 할 정도로 집이 멀어 자주 지각했고 좋은 교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그렇지 못했던 것, 학급의 ‘짱’이라 불린 권력자에게 홀로 대항했음에도 학우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것. 하지만 운동을 잘했고 시사 문제에 해박해 때때로 우리의 탄성을 자아나게 했다는 점이 전부였다. A의 목적 없는 험담이 계속되자 우리들은 A를 타박했다. 그러자 부끄러운 듯이 “사실 부럽다”고 그렇지만 “너희도 생각해 봐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건 당연하지 않냐”고 “오죽했으면 속담으로 있겠냐” 며 이것은 이기거나 지거나 양자택일이 지배하는 경쟁 사회를 살고 있는 인간의 본성이자 욕망이라고 항변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모두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지만 대체로 그 의견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나는 뭔가를 답해야 한다는 마음에 “네가 이기적이어서 그래. 그렇지 않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인간도 많다”며 논쟁을 이어갔다. 결국 그날의 술자리는 인간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의 이분법을 맴돌다 적당히 중간 입장을 취하며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론으로 끝이 났다. 이후에도 종종 A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이 논쟁이 떠올랐다.

만약 A가 정서적으로 나와 멀리 떨어져 있고 다시 접촉할 기회가 없는 인물이었다면 그가 이룬 결과에 대한 그날의 논쟁은 타자의 성공을 판단하는 우리의 본성이 선이냐 악이냐를 결정하는 문제로 끝났을 것이다. 아니면 가장 손쉬운 중간 입장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러던 중 A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른 친구에게서 대략적으로 듣게 되었다. 현재 삶과는 다른 미래를 꿈꾸는 것 같았다. 그것이 자신의 현재 영역을 확장하는 수단인지 다른 삶을 위한 발판이 될지 그의 목적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에 대해 점점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우리 논쟁의 시초이자 당사자였던 그를 잊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서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는데 단지 그의 수많은 시도 중 하나의 결과와 그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왜, 어떻게 그가 다양한  삶의 경험과 사회적 조건이 엮여 현재에 도달했는지 묻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그가 서 있는 조건에서 어떤 모습을 만들고 싶은지도 묻지 않았다. A라는 인물에 집중하고 싶어졌다. 곧 있을 동창 모임에서 그와의 대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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