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기쁨이나 새해에 대한 기대감을 주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겨울의 초입이 불러오는 계절의 황량함과 앙상한 나뭇가지들의 이미지와 함께 사랑, 건강, 미래 등에 대한 공포로 다가온다.
이제 현실에서 우리에게 다양한 매체로 전달되는 공포의 대상에 대해 말해보자. 거의 모든 이에게는 저마다의 공포의 대상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 그 대상은 영화나 TV에서 등장하는 처녀 귀신이나 욕망에 사로잡혀 파멸해 가는 여성이었다. 강렬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남들과 다르거나 조금 튀는 여성을 만날 때면 으레 이미지나 언어적으로 그 모습과 중첩돼 공포로 다가왔었다.
최근 즐겨보는 미드인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는 미국의 역사에 마녀, 정신병원 감금, 인종차별의 문제, 동성애자, 장애자, 여성 등을 버물려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 주제들이 주인공들의 일상에 들어오면서 공포스러운 사건을 일으키고 그들의 전체 삶을 지배하고 방향 짓는다.
이 드라마가 큰 호응을 얻는 것은 매년 시간과 대상을 달리하며 공포를 일으키는 주체들이 어떤 괴물스러운 존재로, 어쩌면 모른 채 무시하고 지나갔을 현실 사회문제들과 부딪쳐 파열음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발전에 따라 사회로 진출했던 한국의 여성들이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공포의 대상으로 재현된 것처럼, 대다수가 암묵적으로 순응하는 지배적 질서를 깨뜨릴 위험요소로서 그 주체들은 매체에 의해 공포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이처럼 지배적 질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몇 가지 공포의 이미지와 대상을 만들어낸다. 끊임없이 현실에서 우리의 삶을 내적으로 압박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전체 삶을 지배하며 현실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질서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그것을 깨뜨리려는 주체들의 다양한 욕망을 ‘공포’로 상정한다. 누군가에 의해 계속해서 생산되는 공포의 위협은 지배적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그렇게 우리에게 공포로 결합된 대상들은 이 질서를 유지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이미 공포로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6세기 그리스도교의 권력과 통제의 메커니즘이 개인에게 뿌리내리려는 순간 신들린 수녀가 나타났다는 푸코의 “비정상인” 강의록 설명처럼 그에 앞서 나타나는 주체들의 다양한 욕망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것을 통제하려는 지배적 질서가 뒤따른다.
우리에게는 이미 공포로 자리 잡은 몇 가지 이미지와 대상 이외에도 우리가 전유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들을 현실에서 만난다. 그리고 다른 삶과의 끊임없는 만남과 저항으로 우리에게 머문 공포를 상쇄시킬 수 있다. 최근 ‘서울 시민 인권 헌장’이 동성애를 옹호했다며 이를 격렬히 반대했던 보수 단체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강내영(사회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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