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은 2002년에 발간된 이해인 수녀의 수필집 제목입니다. 자연을 벗 삼아 수도생활을 하는 수도자답게 그녀는 일상에서 길어 올린 소소한 기쁨과 깨달음을 고운 빛깔의 언어에 담았습니다. 그녀의 글을 읽노라면 고요한 뜰에 앉아 마당을 뒹구는 햇살과 엎드린 장독대와 웅크려 일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는듯한 기분이 듭니다. 늘 그렇듯이 마음이 따뜻해지면 있어야 할 곳에 꼭 있어야 할 풍경들을 그녀는 어김없이 불러내 앉혀 놓곤 합니다. 사실 그녀는 ‘말로 향기를 전하는 꽃’인지 모릅니다.

우리 대학 교정에서도 향기로 말을 거는 꽃, 말 그대로 활짝 핀 꽃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공대, 법대, 예술대, 인문대 등 교정 곳곳에 씨알 굵은 목련과 단단한 동백이 보란 듯이 얼굴 내밀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대강당 옆 홍매화일 것입니다 녀석은 꽃망울을 피워 올리기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연구실이 녀석과 이웃해 있어 그의 성장과정과 사람들의 기다림을 매일같이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카메라를 들고 녀석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를 몇 주째, 마침내 꽃망울을 터뜨린 뒤에 그는 그야말로 스타가 되었습니다.

중절모를 쓰신 어르신부터, 만삭의 임산부, 엄마 손을 붙잡은 아이, 히잡을 두른 외국인 학생까지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수많은 이들이 아낌없이 그를 반겨주었습니다. 그럴 때면 홍매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살짝 비틀고, 얼굴에 손가락 브이를 붙여’ 사진을 찍게 하는 마법을 부리기도 합니다. 이런 종류의 풍경이 어떤 이에게는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꽃이 피기 전까지 홍매화의 몸뚱이는 이리 비틀리고 저리 비틀려 바짝 타버린 검은 고목처럼 매우 안쓰러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걱정을 비웃듯 보드라운 연분홍의 꽃망울과 알싸하게 매혹하는 향기로 다시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꽃에 열광하는 건 꽃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고, 꽃이 아름다운 건 오랜 세월을 견뎌 마침내 소중한 열매를 맺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 뒤에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겨웠던 어둠의 시간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고백컨대 우리는 그들이 맞서왔던 찬바람과 찬 서리의 칼날을, 수없이 뒤척였을 해와 달의 시간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삶 역시 누추하고 쓸쓸한 날들을 견디고 이겨내야만 향기로워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스스로의 외양과 현실이 보잘 것 없이 비루하다고 느껴지더라도, 그것마저도 자신만의 향기를 만들고 꽃 피게 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간직했으면 합니다. 올해가 그리고 살아갈 날들이 홍매화의 그것처럼 매혹적인 향기로 가득 차길, 교정뿐만 아니라 구성원 모두에게 유쾌하고 행복한 평화가 함께하길 바래봅니다. 문득, 그런 향기 머금은 그(녀)가 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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