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살아가면서 과거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는다. 과거에는 이런 것이 없었을 거야, 옛 여자들은 한사람만 사랑했을 거야, 사랑이란 걸 해보지도 못한 채 남편만 보고 살았을 거야……. 하지만 옛날에도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는 사랑도 있었다. 책을 뒤적이다가 1500년쯤 전 화려한 사랑을 나누었던 신라 청춘 남녀의 사랑과 그들이
우리의 희망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취임하고 방송통신위원회, YTN, KBS의 수장을 자신의 측근들로 채우더니 그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미디어 관련법을 개정하여 이 나라의 여론을 통제하려고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분명히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모든 국민들에게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이야기만을 듣
시대는 변했으며, 상생과 포용이 이 시대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제 대학은 실리를 위해 불의가 있더라도 눈감고 그것을 포용해야 하며 심지어는 불의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몽준의 명예철학박사학위 수여가 무산되자 대학본부에서 학생들을 질타하며 내놓은 호소문에 담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시대의 가치이다. 학생들은 시대가 변했다는
화사한 봄처녀의 입술에 피어나는 미소처럼 동그랗게 봄이 왔다. 겨우내 겹겹이 얼었던 계곡의 얼음장 밑에서부터 그렇게도 기다렸던 생명이 움트는 다이나믹한 시간이 열리기 시작하는가보다. 소발슨은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조각가 중에 한 사람으로서 백대리석을 조각한 예수 그리스도상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겨울날, 덴마크의 왕
나는 중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러 금요일마다 화순의 한 공부방에 간다. 어느 날 내가 버스를 타러 후문 쪽으로 가다가 용지에 한 꼬마 아이가 빠진 걸 봤다고 하자. 나는 연못에 들어가서 아이를 구해야 할까? 옷이 젖을 테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공부방 수업은 취소해야 할 것이다. 즉 나에게 손해가 따른다. 하지만 내가 구하지 않으면 아이는 죽을 수도 있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중에 한명인 혜원 신윤복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다. 논란의 한쪽은 아무리 드라마나 영화라고 하더라도 신윤복을 여자로 묘사하는 것은 지나친 역사 왜곡이라는 것이며, 다른 한쪽은 생애사가 잘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신윤복을 여자로 묘사한 것은 역사 왜곡이 아닌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분명 신윤복을 여자라고 묘사하는 것은 일견 역사 왜곡의
가을향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작고 약한 나뭇잎이지만 오히려 모든 것을 가진 이의 풍요로움보다 모든 것을 베푼 이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 적군의 비행기가 날아오고 있다. 막 엎드릴 자세를 취하던 장교는 4~5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한 어린 병사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장교는 더 생각할 것도
언젠가 외국인 친구가 펑펑 울면서 말하기를, 너 외국인이 여기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이러는 거였다. 제 터전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 그다지 겪어보진 않았지만 그래 짐작이라도 할 수는 있겠다 싶은데,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다녀온 아이가 그리 서럽게 울어대니 당혹스럽고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이봐, 한국의 관공서는 다 그래, 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퀼로스 등 위대한 비극작가들을 낳은 아테네가 동시에 위대한 철학의 발상지였다는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세계와 인간의 속내를 파고드는 정신은 결국 슬픔과 고통에 대한 성찰을 과제로 떠안게 되는데, 그러한 성찰을 개념으로 객관화한 것이 철학이라면 드라마로 그려낸 것이 비극이다. 어느 때나 진지한 작가들은 자기 시대의
어느 모임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내가 앉아 있던 옆 좌석에는 어느 기업의 중견 간부정도로 보이는 어른들이 앉아 계셨는데, 그분들은 뮤지컬 ‘맘마미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물론 그분들의 이야기를 일부러 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내용인지라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 중에 어느 한 분이 원래는
세계 문학사상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만큼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은 찾기 어렵다. 1774년 발표된 소설의 줄거리는 남의 약혼녀 로테를 사랑한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당시 25세이던 괴테 자신의 실연 체험에 절친한 친구의 자살을 접목해서 썼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는 인습과 체제, 귀족 지배에 반항하는 젊
대체나, 말로 해서 될 일이면 쫓아가 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신식 슈트와 슈퍼카, 가면과 망토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무엇이 잘못 되었다 일러줄 때 그들이 듣는 척이라도 했다면 그토록 화가 나지도 않을 것이고,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토록 힘겨운 훈련들을 견뎌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 세상이 좀 더 나아질 수
대학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수업이 뭐지? 심심풀이 삼아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저마다 이런저런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나에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수업이 있다. 스무 살 때 나는 어느 작은 신학대학에 입학했는데, 첫 학기에 <세계종교사>라는 교양필수 과목이 있었다. 세계의 주요 종교들에 대한 입문 강좌였다. 신입생들은 월요일엔 고대 이스라엘의 역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여름 내내 찌는 듯한 불볕더위에 지쳐있던 학교가 활기를 되찾은 듯한 느낌에 절로 흥이 난다. 나처럼 개강을 맞아 흥이 났을 법한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번 해보고 싶다. “수강신청은 잘 했어?” 수강신청기간 동안, 요즘 학생들이 지나치게 요령만 늘었다는 소리를 여러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인 즉, 학생
‘이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그의 아름다움에서 발산되는 광채에 너무나 감동되어 그 이상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눈부신 그의 얼굴과 몸짓의 추억을 눈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뷰르캉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기도했다. 그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있도록 기도했다.’ 프랑스의 소설가 장 주
최근에 좀 흥미로운 영화를 봤다. 로빈 윌리암스 주연, 배리 레빈슨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Man of the Year’, 말하자면 심야 정치 풍자 토크쇼 진행자인 코메디언 톰 돕스가 내친김에 미국 대선에 뛰어들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가, 그게 전자투표기의 오류 때문임을 알고서는 대통령직에서 사퇴한 뒤 본업으로 돌아가 그 전보다
서양 최초의 문학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라고 한다. 트로이 전쟁을 그린 이 서사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이 좋은 봄날에 그 길고 지루한 전쟁담을 굳이 펼쳐들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고대인들에게 ‘훌륭한 삶’의 교과서 노릇을 했던 이 시의 주
인터넷의 강력한 기능은 개방성과 정보 유통의 신속성일 것이다. 인터넷에 올려진 정보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누구나 접근하여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여론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기존의 정치과정 속에서 중간 매개 집단이 지니고 있던 권한과 기능이 사실상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이에게 개방됐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넷은 정치 참여비용
장애인, 이주노동자, 이주 여성, 동성애자, 빈곤 계층의 사람들. 우리 사회의 소수자라 일컫는 사람들이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조금’ 다른 신체 구조, 성적 취향, 피부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이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이다. 공교롭게도 이 소수자들은 하나 같이 그 수가 적다. 그래서 아무리 외쳐도 큰 목
이제야 단지, 이야기가 된 소설들을 읽을 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때 나도 소설을 써보겠다고 날마다 컴퓨터를 부여잡고 징징거리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나는 아닌가보다 하고 체념하고 좋은 소설 읽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문장이 문장을 이으면서 한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올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미리 생각하고 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