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중에 한명인 혜원 신윤복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다. 논란의 한쪽은 아무리 드라마나 영화라고 하더라도 신윤복을 여자로 묘사하는 것은 지나친 역사 왜곡이라는 것이며, 다른 한쪽은 생애사가 잘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신윤복을 여자로 묘사한 것은 역사 왜곡이 아닌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분명 신윤복을 여자라고 묘사하는 것은 일견 역사 왜곡의 소지가 있기는 하다. 게다가 그것이 지금처럼 TV나 영화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수용자들에게 전달된다면 우리는 언젠가 A초등학교의 미술 시험문제에 ‘조선시대의 풍속화가 신윤복은 성별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나왔을 때, ‘여자’라고 답을 썼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위와 같이 생각한다면 역사왜곡이라는 주장이 일견 타당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신윤복을 묘사한 드라마와 영화에 대해 위와 같은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신윤복이 여자라는 것은 가정일 뿐이고 이것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신윤복은 여자가 아닌 남자다’라는 것이 아니라 ‘신윤복을 여자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싶다.
  드라마와 영화를 접한 아이들이나 외국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오해할 수 있다는 걱정은 ‘기우(杞憂)’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들이 실제로 우리의 역사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윤복이 여자라는 가정을 역사 왜곡 운운하며 비난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러한 가정을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찬사를 보내고 난 이후에 상상력과 창의력의 질적인 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점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문화산업이 각광 받으면서 콘텐츠의 개발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콘텐츠 개발을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 즉, 상상력과 창의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에 요즘 논의되고 있는 신윤복은 역사 왜곡의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처럼 수백 년 동안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가 여태껏 상상력의 폭을 넓히는데 노력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역사적 사실로부터 기인한 신윤복이 여자라는 가정은 콘텐츠적인 차원에서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늘에 있는 신윤복이 오늘날 벌어진 자신에 관한 논란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신윤복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신윤복은 콘텐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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