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좀 흥미로운 영화를 봤다. 로빈 윌리암스 주연, 배리 레빈슨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Man of the Year’, 말하자면 심야 정치 풍자 토크쇼 진행자인 코메디언 톰 돕스가 내친김에 미국 대선에 뛰어들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가, 그게 전자투표기의 오류 때문임을 알고서는 대통령직에서 사퇴한 뒤 본업으로 돌아가 그 전보다 더 많은 인기를 끌어모으며 결국 올해의 인물이 된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짜임새와 연결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지루하다 싶을 때마다 날려주는 칼날같은 정치풍자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사정없이 추락한 지금에 와서는 더욱 그렇다. 에이, 진작 좀 개봉하지. 작품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대중 교육용으로 무료상영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어쨌든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았던 이 영화, 미국 개봉시 대부분의 평론가들의 평 또한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워낙 주연배우와 감독의 쟁쟁한 작품이 많았던 터라 더욱 그러했는데, 이게 우리나라에서 진짜로 유명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다. 2006년도 10월 13일, 미국에서 개봉하여 첫 주 2,515개 개봉관으로부터 개봉주말 3일동안 1,230만불의 수입을 벌어들이며 주말 박스오피스 3위에 랭크되었던 이 영화가, 한국에서는 그 흥행성을 인정받지 못하여 극장 개봉을 하지 않고 DVD판매만 하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니까, 이유는 뻔하다. 사소한 음모론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대한민국 대선기간에 딱 걸렸던 거다. 톰 돕스가 날리는 대사마다 어째 좀 이상해 보였던 걸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마다 막대한 선거비용을 들이고, 홍보전을 벌이는데, 그 돈을 누가 대어주는가? 그들에게 선거비용을 지원했던 사람들에게 대통령 당선자는 구속을 받기 마련이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헌신해야 하는데, 우리의 대통령은 기업단체에게, 제약회사 대표에게, 특정 이익집단에 봉사하고 있다. 극중에서 톰 돕스는 원체 유명한 코메디언이었으니 홍보가 따로 필요없었을지 모르지만, 작년 대선과 이번 총선에서 공약은 짱짱하지만 포스터가 구리다고 욕먹었던 진보신당과 이미 당선이 확실시되는 마당에 굳이 토론회에 나가 점수 깍을 필요없다던 몇 몇 후보들을 생각하면 한참 웃다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오는 거다.
  대선만 아니었대도, 이런 씁쓸한 코메디의 개봉까지 막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주인공 톰 돕스는 우민화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남다른 ‘우민화 정책’이 엄청나게 성공을 거둔 사회가 바로 지금 우리사회일 테니, 굳이 막지 않아도 영화는 지루했을 것이며 조금 젠체 하는 사람들은 원래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진 것 아니냐고 궁시렁거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치적 효과는 나름 상당했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왜냐하면 톰 돕스가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국민을 지치게 하는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 대통령에게 “패배의 기회를 선사하자”고 외쳤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를 잘하면 그럴 필요 없겠지만, 잘못하기만 하면 무조건 내쫓고, 늘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갈아치우는 것이 민주주의의 지름길이라는 거다. 이 영화, 지금이라도 개봉하면 안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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