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살아가면서 과거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는다. 과거에는 이런 것이 없었을 거야, 옛 여자들은 한사람만 사랑했을 거야, 사랑이란 걸 해보지도 못한 채 남편만 보고 살았을 거야……. 하지만 옛날에도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는 사랑도 있었다. 책을 뒤적이다가 1500년쯤 전 화려한 사랑을 나누었던 신라 청춘 남녀의 사랑과 그들이 남긴 사랑의 노래를 엿보게 되었다.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화랑이 존재했던 그 시대, 사다함이라는 젊은 화랑이 있었다. 화랑들의 우두머리인 풍월주를 지낸 자이니 얼마나 대단한 이였을까? 그는 신라가 가야를 칠 때 16세의 나이로 출정하여 공을 세우고, 임금이 상으로 내린 포로를 모두 풀어줄 만큼 능력과 인품도 갖춘 이였다. 그런 사다함이 사랑하는 미실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화려한 연애경력을 자랑하는 미실은 「삼국사기」에는 기록이 없지만 「화랑세기」에는 그녀의 일이 실려 있다. 아마도 김부식은 당대 대표적인 남자들과 관계를 맺은 미실을 역사에 기록할 수 없었으리라.

미실과 사다함의 사랑은 가야를 치기 위해 출정하는 사다함을 전송할 때 미실이 지어서 불렀다는 ‘풍랑가風浪歌’라는 노래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바람이 불되 임 앞에 불지 말고/물결이 치되 임 앞에 치지 말고/어서어서 돌아오라/다시 만나 안고 보고/아아, 임이여!/잡은 손을 차마 뿌리치려오.” 바람도, 물결도 사랑하는 사다함만은 피해가서, 무사히 살아서 돌아와 다시 만나 안아보고자 하는 예쁜 사랑. 하지만 미실의 사랑은 권력에 대한 욕심보다는 작았나 보다. 미실은 사다함이 전쟁터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지소태후의 아들 세종과 결혼을 한다. 사랑을 쉽게 버린 미실과는 달리 사다함은 지고지순했다. 전쟁터에서 돌아와 사랑하는 여인이 이미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된 것을 안 사다함은 절망했다. 그는 ‘청조가靑鳥歌’를 지어 애처롭게 자기의 마음을 노래한다.

그리고 사랑에 아파하던 젊은 청년은 1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죽어서 세종을 보호하겠다하고, 자기 뒤를 이을 풍월주로 세종을 추천한다. 미실은 사다함이 죽은 후에도 태자 등 많은 남자와 관계를 맺어 남편인 세종이 상처를 받아 자청하여 싸움터로 가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하였으며, 본인은 원화의 자리에 오르는 등 권력을 누렸다. 그녀는 사다함의 죽음에 절망하지도, 남편에게 사랑을 갈구하지도 않았다.

아주 오래전, 불같은 사랑이란 게 없었을 것 같은 그 때, 사랑때문에 세상을 떠난 17세의 사다함이 있었다.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기만 했을 것 같던 그 시절에, 사랑보다는 권력을 택하고, 여러 남자를 이용해 세상을 풍미했던 미실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예전에는 숨어서 하는 사랑만 있었을 거라는 고정관념에 빠졌던 나는, 화려한 신라 시대의 사랑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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