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수업이 뭐지? 심심풀이 삼아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저마다 이런저런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나에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수업이 있다. 스무 살 때 나는 어느 작은 신학대학에 입학했는데, 첫 학기에 <세계종교사>라는 교양필수 과목이 있었다. 세계의 주요 종교들에 대한 입문 강좌였다.
  신입생들은 월요일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웠고 수요일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었다. 그리고 목요일이면 우리는 목사이며 신학자인 교수에게서 온갖 ‘이방 종교들’에 대한 강의를 듣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교수는 힌두교도들이 꿈꾸었던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숭고함을 말하고 붓다가 설했던 비어-있음[空]의 충만함을 말했다. 우리는 공자의 가르침에 대해 읽었고 『간디 자서전』의 독후감을 썼다. 끝없이 채우고 커지려 하는 교회를 비판하면서, 교수는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反者道之動]이라는 『도덕경』의 구절을 음미했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교단의 정치세력에 의해 3년 전 출교 당했다는 학장이 교수의 스승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좀더 나중이었다. 그런 사실이 아니더라도 교수의 강의는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사건’이었다. ‘성숙한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게서 배울 줄 알아야 한다’는 교수의 가르침은, 예수에 대한 일방적 신앙심으로 뜨거웠던 새내기 신학도들이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혼란스런 시선들을 의식하면서 교수는 타종교와의 만남을 학문적으로 고민했던 신학자들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지하게 소개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교수의 강의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무작정 받아 적기만 했다. 첫 학기가 그렇게 갔다.
  수업은 끝이 아니었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우연히 <세계종교사> 노트를 뒤적였는데 머릿속에서 다시 ‘사건’이 벌어졌다. 1년간 속앓이를 거듭한 후라서인지, 적을 때만 해도 거의 암호나 다름 없었던 말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말이었던가! 이런 뜻이었던가! 정신없이 노트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전혀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느낌  이었다. 하지만 필기한 내용 중에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았다. 방법은 하나였다. 방학이 끝나고 2학년이 된 나는 1학년 교실로 가서 <세계종교사> 강의를 다시 들었다. 3학년이 된 후에도, 다시 <세계종교사>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같은 강의를 세 번 들으면서 나는 신체검사 하듯이 매년 내 공부의 키를 쟀다.
  교수가 광주에 온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다. 다석 유영모에 대해 강연을 한다고 한다. 신학자들은 거의 관심 갖지 않는, 비범한 사색을 통해 기독교와 동양종교를 주체적으로 종합하려 했던 ‘거리의 철학자’ 유영모에 대해서 말이다. 학교는 두 번을 옮겨왔고 교회는 떠난지 오래지만 13년 전에 시작된 수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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