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군 고달면 두가리 가정마을 방문
어미, 보조용언, 담화표지로 알아보는 전라도 정취

완연해진 가을을 알리는 듯 청명한 하늘 아래, <전대신문>은 전라도 사투리를 찾아 지난 30일 곡성으로 두 번째 여정을 떠났다. 곡성군 고달면 두가리 가정마을은 섬진강의 맑은 물소리가 들려 마음까지 청아해지는 곳이었다. 굽이친 강을 따라 걸어가다, 가정마을 마을회관에 방문했다.

‘-ㄴ께’ ‘-제’는 이미 익숙하제라
“마을이 조그매갖고 단체는 잘된께, 마을이 쬐깐해갖고. 서리 물며 살아야제.”

마을회관 안에 들어서자, 55년째 가정마을에 거주 중인 이복순 씨(74)를 만날 수 있었다. 가정마을을 작아도 좋은 마을이라고 표현하는 이 씨의 말에서는 전라도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가장 유명한 전라도 사투리 ‘-ㄴ께’는 이유를 뜻하는 표준어 ‘-니까’에 대응하는 사투리다. 표준어 ‘-지’와 같은 의미인 사투리 ‘-제’는 문장의 끝에서 사용되는 종결어미다.

“하여간 내가 모다는 거 힘들지. 들도 모다고, 무거운 거. 바깥은 걱정 없는디, 무거운 거 몬 들고. 고런 게 힘들어.”

이 씨의 말 끝에서 사용된 ‘-ㄴ디’는 표준어 ‘-ㄴ데’의 사투리다. 대립되는 내용을 이어주거나 이유를 제시하는 연결어미로 쓰이기도 하고, 감탄조나 질문을 나타내는 종결어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요시 난 다리가 바짝 아파 죽겄당께잉. 마음은 젊은디 몸땡이가 말을 안 들어.”

힘든 일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씨는 다리가 아프다고 답하며 ‘죽겄당께’라고 말했다. ‘-당께’는 내용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종결어미 ‘-다니까’의 의미를 가진다. 또한 미래를 추정하거나 화자의 의도를 담는 선어말어미인 ‘-겠-’은 사투리 ‘-겄-’으로 대체된다. ‘-것-’은 전라 외에 충남과 경남에서도 쓰인다.

추측의 ‘-갑다’, 동사·형용사 다 되는 ‘-불고’
가정마을 부녀회장인 양영숙 씨(70)는 사무장을 찾는 이 씨의 질문에 “사무장? 사무장 갔는갑더만”이라며 “없지라잉, 사무장이”라고 기자에게 물었다. 양 씨가 사용한 사투리 ‘-은(는)갑다’는 추측을 나타내는 표준어 ‘-은(는)가 보다’를 줄인 말이다.

이 씨와 함께 마을회관에서 만난 김순엽 씨(84)는 밭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다. 17살부터 계속 가정마을에서 살아온 그는, 최근 날이 더워 작물이 말라버리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밭에 강께 타부러갖고 암것도 못 쓰제. 들깨도 못 쓰져불고. 콩도 못 씨고, 팥도 못 씨고. 들깨도 몰라불고 암것도 쓸데가 없어부러, 가본께.”

사투리 ‘불다’는 표준어로는 ‘버리다’로, 어떠한 행동이 이미 끝났음을 나타내는 보조용언이다. ‘-어’와 함께 ‘불어[부러]’로 자주 쓰인다. 특이한 점은, 표준어 ‘버리다’는 동사에만 붙는 보조동사인 반면, 사투리 ‘불다’는 형용사에도 활용된다는 것이다. 김 씨의 말에서 볼 수 있듯 ‘모르다’ ‘없다’와 같은 형용사에도 ‘불다’가 붙을 수 있다.

퉁명스러운 말투에 담긴 걱정
작물이 말라 근심하는 김 씨에게 양 씨는 말을 얹었다.

“다 타부고 잉, 비가 안 와서 잉. 콩도 안에 안 들었어, 안 들어부잖아. 날이 이렇게 뜨거우면은 그면 채소가 안 이탄께. 이게 뜨거워갖고 못 쓰겄구마.”

전라도에는 말을 한층 더 구수하고 친근하게 만드는 감탄사가 있다. 대표적인 말은 ‘잉’이며, 정확히는 비모음[ĩ]이다. 문장 어느 곳에나 쓰일 수 있고, 주로 끝부분에 붙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벼도 인자 수매 같은 건 안 허고. 인자 감을 많이 심어놓고 그래요잉, 감 같은 것을. 그런 것을 해갖고 감도 잘 팔아먹고 그랬는디, 인자 나이가 들고 긍께 힘이 들어서 인자 고것도 못허겄어.”

이 씨의 말에서 드러나듯 ‘잉’만큼 ‘인자’도 자주 쓰이는 담화 표지다. ‘인자’는 ‘이제’나 ‘이때’를 의미하는 ‘인제’의 방언이다. 명사나 부사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추임새처럼 문장 곳곳에 들어가 쓸 수 있다. 전라 외에 경상에서도 들을 수 있는 표현이다.

연골주사와 다리 수술을 말하는 이 씨에게, 양 씨는 “긍께 아프지 마시껭 잉 자꾸”라고 말했다. 퉁명스러운 말투지만 그 안에 담긴 걱정과 관심은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했다. 사투리는 단순히 단어나 문장이 아닌, 감정을 전달하는 언어이다. 마음을 담는 사투리야말로 어쩌면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소중한 유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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