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 인지리에 스물 시살 먹어서 시집 왔다. 선착장 쩌그 목포 배 닿는데 거기 살았어. 지금 다 나가불고 열 다섯 집이나 살드라. 살든 집도 인자 뜯어 먹어가꼬 버스에서 울었자네.”

김이심 씨(77)는 23살에 결혼해, 인지리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54년째 인지리에서 살고 있다. 그는 10년 전 버스를 타고 읍에서 인지리로 가던 중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 사라진 걸 발견했다. 터전을 바꾼 지 40년이 지난 시기였지만, 당시 추억이 떠올라 버스에서 울컥 눈물을 흘렸다.

“열 살 먹어서 입학했제. 나만 그란 게 아니여. 동네 사람들 다 그랗게 했어.”

그는 10살이 넘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집에서 학교가 너무 멀어 8살의 나이로는 걸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0살이 넘었다고 시간 맞춰 학교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집에 시계가 없고 인제 딴 사람도 없응께. 산이 높응께 그늘이 져서 해가 뜨면 학교에 달려갔어.”

어린 시절 그는 시계가 없어 해가 떠 있는 위치를 보고 집에서 학교로 출발했다.

“열 살인디 해찰을 부리고 놀제. 아침에 가꼬 저녁에 오면 돼야.”

열 살이라는 나이에 먼 길을 장난치지 않고 걷기란 쉽지 않았다. 학교에 시간 맞춰 가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학교 옆에 거제라고 동네가 있어. 그 동네 가시나들은 인제 학교 가서 밥 먹고 남하러 가. 울들은 인제 가고 있는데 그 가시나들 나무하면 거그서 그 아덜하고 또 놀아.”

그가 살던 안치리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 거제마을 사람들은 등교 후 점심을 먹고 나무를 했다. 학교 가는 길에 나무를 하는 거제마을 아이들과 만나 놀곤 했다.

“그렁께 이 동네는 암도 일 안 해. 나나 일 하제, 일하는 사람 한나 없어. 그랑께 다 가난하게 살고 그러지. 저짝 동네 사람들은 농사를 엄청 많이 지어. 이짝 사람들은 맨 먹고 놀고, 저짝 사람들은 나가서 일만 허고.”

인지리에는 독치마을과 인천마을이 있다. 그가 사는 독치마을 사람들은 인천마을 사람들보다 연령대가 높다. 그는 독치마을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과거 했던 농사일을 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일했을 때보다 가난하게 살지만, 다들 삶에 만족하믄서 살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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