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독치마을에서 사투리 조사
호파, 심기다, 맨, 자빠친다 등 다양한 표현 살아있어

우리의 말’인 사투리라는 언어적 유산을 기록하기 위해 <전대신문>과 우리 대학 국어문화원이 함께 ‘전라도 사투리 열전’ 기획을 이번호부터 4회 연재한다. 기획에서는 호남의 다양한 지역을 방문하여 사투리 사용자를 만나고 그들의 사투리를 취재한다. 연재는 ‘어휘’ ‘통사’ ‘발음’ ‘억양’ 순서로 보도될 예정이다. /엮은이

표준어와 사투리 어휘의 유사성

<전대신문>은 지난 2일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독치마을을 찾았다.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에 상륙하기 4일 전이었지만, 하늘은 걸리는 것 없이 맑았다. 독치마을에서 산 지 54년이 다 되어가는 노인회장 김원섭 씨(83)는 저물어가는 농촌의 모습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사람들 일당 주고 나믄, 여그 사람들 남는 돈이 어. 그랑께 아무리 정부에서 지원해준다 해도 농촌은 힘들어. 여그 호파가 유명하다 해도 심길 때부터 밭 골라서 비닐 씌우고 하는 것이 인건비가 얼마나 많이 드는데.”

김 씨의 말 속에는 농부였던 그의 삶만큼이나 진도 사투리가 진하게 배어있었다. 진도에서 대파를 가리키는 말인 ‘호파’는 본디 ‘만주 지방에서 나는 파’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진도에서는 지역 특산물인 ‘대파’를 뜻한다. ‘심기다’는 표현도 표준어로서는 ‘심다’의 피동사로 ‘심어진다’의 뜻을 가지나 충청, 전남 등 지역에선 ‘심다’의 뜻 그대로 쓰인다. 이것들은 대응되는 표준어와 의미가 그리 멀지 않은 사투리다.

표준어와 전남 사투리 어휘의 차이점

반면 김 씨와 함께 마을회관에서 만난 박복자 씨(82)와 백정순 씨(83)는 진도 사투리를 사용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진도는 맨 사투리 쓰제”라며 “자빠친다 고것도 사투리고, 쬐그만 밭다가 뙤겡치라 그래, 고것도 사투리여”라고 말했다. 여기서 ‘맨’은 ‘내내’의 뜻을 가진 진도 사투리다. 표준어 부사 ‘맨’은 ‘다른 것은 섞이지 아니하고 온통’이라는 뜻으로, ‘내내’의 전남 방언인 ‘맨’과는 관련이 없다.

‘자빠치다’는 본뜻인 ‘자빠뜨리다’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는 있지만, 강조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인 ‘-뜨리다’와 ‘-치다’의 대응은 생경하다. ‘뙤겡치’도 표준어 ‘뙈기밭’에 대응하는 사투리인 ‘뙤겡이밭’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치’와 ‘밭’의 대응 관계가 존재한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뙈기밭’은 문장에 드러난 것처럼 ‘큰 토지에 딸린 조그마한 밭’을 의미한다. 표준어와 사투리는 일정부분 유사성을 띠지만, 그럼에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의 뜻이 존재한다.

지역적 특색 머금은 사투리 어휘

“시엄메가 예순 여섯에 돌아가셨어. 그란데 시엄메 딸이 뭐라고 하는 줄 아냐. 마치좋다고 그래. 육십 여섯인데 마치좋다고 그래. 그래 나는 마치좋은 줄 알았는디, 나는 칠십 일곱 살이나 퍼먹었네.”

스물세 살에 독치마을에 시집와 터를 잡았다는 김이심 씨(77)는 ‘마치좋다’라는 표현을 떠올렸다. ‘마치좋다’는 타향 사람에겐 낯선 어휘다. ‘마치좋다’는 표준어 ‘마침맞다’로 해석된다. ‘어떤 경우나 기회에 꼭 알맞다’는 뜻이다. ‘마치’가 표준어 ‘마침’과 대응되는 것이다. ‘엄마’라는 뜻을 유추할 수 있는 ‘엄메’도 다른 지역 사람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특이한 사투리다. 그에 비해 ‘가시나’와 같은 어휘는 전라도뿐만 아니라 경상, 충청 등 다양한 지역에서 사용하는 표현이다.

“옆 동네 가시나들은 학교 가서 밥 먹고 남하러 가. 우리 가믄 그 아덜하고 놀아 또.”

김 씨가 어릴 적 추억에 관해 이야기한 대목이다. 문장에서 나타나는 ‘남’도 ‘나무’를 뜻하는 표현으로 경남, 제주 등 여러 지역에서 쓰인다. 이처럼 사투리는 다른 지역 말과의 차이를 나타내면서도 인접한 지역과의 언어적 유사성을 보여준다.

표준어 어휘와 사투리 어휘는 다양한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 유사한 점도 있다.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외지인들은 잘 머물지 않는 독치마을과 다양한 건물들이 들어선 광주도 많은 부분에서 다르지만,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씨는 비슷할 것이다. 교통, 통신의 발전으로 사투리의 표준어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점점 옅어지는 사투리는 우리가 지켜야 할 언어적 유산이다. 지나치게 표준어를 지향하기보다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 사투리를 사용하는 지역 사람의 의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