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탄환 보존
박관현 열사 덮은 태극기도 보관
"미완의 역사 5·18, 기록물 여전히 살아있어"

기록관 영점서고 내부 모습.
기록관 영점서고 내부 모습.

5·18민주화운동기록관(기록관)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민중항쟁(5·18) 기록물 9개의 범주 중 △시민들의 성명서·선언문, 일기, 취재 수첩 △흑백필름 및 사진 자료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 등이 보존되어 있다.

김홍길 5·18연구실 학예연구사는 “5·18의 기록들은 여전히 살아있다”며 “진상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역사 자체가 미완 상태”라고 말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잊히기 때문에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학예연구사는 “기록관은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기록관이 지향하는 바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누구든지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기록물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으면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기 어렵다. 기록관에서는 5·18의 기록물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김 학예연구사는 “기록물은 당사자의 기억을 보강하기도, 기억을 재현하기도 한다”고 “5·18의 기억을 다음 세대로 전승하기 위해 기록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앞으로 기록관이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서는 “기록물을 보존하는 기록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다”면서 “5·18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콘텐츠 개발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웹툰, VR 체험, 5월 일기 낭독 영상 등이 그것이다. 이어 기록물 보존을 위한 통합 DB화와 기록물에 대한 연구를 위한 지속적으로 해나갈 예정이다.

5·18 기록물들은 5·18 31주년인 201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기록관 전시실과 5·18 세계기록유산 누리집 아카이브 자료실을 통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 기록물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전대신문>이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것을 포함해 기록관이 소장한 기록물을 소개한다.

기록관 수장고는 4곳으로 기록물 종류에 따라 다르게 보관하기 위해 제1~3수장고, 영점서고로 구성되어 있다. 제1수장고에는 보상결정서를 비롯한 5·18과 관련된 문서 위주의 행정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제2수장고에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들과 민간 기록물, 수집되거나 기증된 기록물, 기록관에 위탁된 기록물들이다. 제3수장고는 크기가 큰 미술품이나 설치 작품 위주로 보존되어 있다. 영점서고는 탄환, 필름 등 낮은 온도에서 보관해야 할 기록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탄환

5·18 부상자의 몸에 있던 탄환
5·18 부상자의 몸에 있던 탄환

영점서고에 보관되고 있는 작은 탄환은 사람 몸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이는 환자들 몸에서 적출한 총탄과 총알을 병원에서 기증한 것이다. 또한 망월동 묘역에서 시신을 이장할 때 형태가 남은 총알을 국립5·18민주묘지 담당자들이 전달해 준 것도 있다.

탄환 고리

고리에 걸린 4개의 탄환은 2022년 5월, 광주기독병원에서 열린 5·18 학술 행사를 갔을 때 당시 기독병원 직원이 기록관에 기증했다. 김 학예연구사는 “기증한 분이 잊지 않으려고 고리에 탄환에 보관했다"며 “언젠가 기증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땅한 기회가 없었던 거 같다”고 말했다.

박관현 열사 시신 덮은, 피 묻은 태극기

5·18 당시 시신을 안치할 때 관 뚜껑 대신 태극기를 덮은 후 구 망월동 묘역에 매장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망월동 묘역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박관현 열사를 덮었던 태극기를 발견했다.

류동운 열사의 노란 양말

류동운 열사는 5·18 당시 전남도청을 사수하다가 5월 27일 계엄군 총에 사망했다. 그가 5·18 현장에서 신고 있던 노란 양말이다. 이 또한 망월동 묘역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하며 나온 기록물들이다.
기록관 담당자들은 1980년 5월 당시 날씨가 고온이어서 시신의 부패가 심해 당시 입고 있던 옷 그대로 매장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송이 담당자는 “보존 처리할 때 형태를 알아볼 수 있게 사진을 찍은 것이다”며 “옷들이 온전한 형태가 아니고 다 조각난 상태였다”고 말했다. 시신이 부패 되는 과정에서 옷이 시신에 붙었다가 떨어졌기에 옷들이 온전한 형태가 아니고 조각난 형태였다는 것이다.

주소연 당시 광주여고 3학년 일기장

주소연 당시 광주여자고등학교 3학년이 쓴 일기장이다. 일기장에는 신문이 스크랩되어 있기도 하다. 일기장을 읽어보면 주씨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느낄 수 있다. “이 사태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이 사태를 이야기할 수 없다” “계엄군의 잔인성을 보았는가?” “쓰러져가는 많은 시민들을 보았는가?”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이는 5·18 세계기록유산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도 광주의 비극을 밝히는 시

“민주화여! 영원한 우리 민족의 소망이여!
피와 땀이 아니곤 거둘 수 없는 거룩한 열매여!
그 이름 부르기에 목마른 젊음이었기에
우리는 총칼에 부딪치며 여기 왔노라!
우리는 끝까지 싸우노라!
우리는 마침내 쟁취하리라!”

1980년 5월 24일, 2차 궐기대회에서 광대 단원 최인선에 의해 낭독된 1980년도 광주의 비극을 밝히는 시의 원본이다. 이는 당시 도청 앞 분수대 연단에서 낭독과 제창된 시다. 

김영택 기자 취재 수첩

<동아일보> 광주 주재기자였던 김영택 기자의 취재 수첩 3권에는 금남로에서 자행된 학살, 시민들의 저항, 해방 기간 공동체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김영택 기자의 취재 수첩 안에는 5·18 당시 이야기도 담겨있지만, 기자 개인정보가 담겨있어 전문이 공개되지는 않는다. 

기증 자료 보관
미국 탐사 저널리스트인 팀 셔록이 기증한 3,500쪽의 자료도 기록관에 보존되어 있다. 1980년 5월에서 15년이 지나 비밀 해제된 기록을 팀 셔록이 미국 중앙정부, 국방부 등에 정보공개를 요청해 받아낸 기록들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 기록물은 △공공기관이 생산한 5·18민주화운동 자료 △시민들의 성명서·선언문, 일기, 취재 수첩 △흑백필름 및 사진 자료 △시민들의 증언자료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자료 △국회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회의록 △국가의 피해자 보상자료 △미국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이다.

※수장고의 일반 견학 및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며, <전대신문>에서 예외적으로 수장고를 열람해 촬영을 진행했다. 기록관의 수장고는 기록물 보존을 위해 관리자를 제외한 민간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5·18 세계기록유산 누리집 QR
5·18 세계기록유산 누리집 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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