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 변제안, 우리 정부가 나서서 가해자 면책하는 일"
"피해자 인권 회복은 우리 세대를 위한 것"

“양금덕 할머니는 돈 때문이라면 이 일을 진작 포기했다며 미쓰비시로부터 사죄를 받기 전에는 죽어도 죽을 수 없다고 했다. 김성주 할머니도 일본 정부가 사죄하고 배상하지 않는 제3자 변제안을 받아들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 중 생존자는 양금덕 할머니, 김성주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 3명이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6일 일제강제동원 판결 해법으로 일본의 사죄나 배상 없이 한국 기업이 그 배상을 대신한다는 ‘제3자 변제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이 생존자들이 보인 반응에 대해 말했다. 2009년부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함께한 이 이사장에게 현재 상황과 앞으로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질문과 답변이다. 

Q.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했다고 주장하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강제동원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무회의 23분 발언에서 일본 총리가 사과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나 총리의 사과 의향이 없었던 건 아니고 여러 차례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사과가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미안하기는 하지만, 불법 행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가 강제 병합이 아닌 서로 좋아서 한 것이라는 의미다.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과를 대통령이 인정하며 더 이상 일본에 요구할 것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다. 일본이 윤 대통령 면전에 당시 식민 지배는 합법이었다고 훈계한 것이다. 

또한 강제동원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건 일본 총리가 일본 사법부 판결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부정하는 것이다. 양금덕 할머니가 일본에서 소송했을 때 일본 법정은 강제 연행, 강제 노동, 임금 미지급, 해방 후에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오인받았던 정신적인 피해를 모두 인정했다. 다만 한일청구권협정 때문에 패소했다. 이는 일본의 사법부 결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일본의 사법 체계가 얼마나 엉성한 지를 자기고백하는 것이다. 잘못한 것이 없으면 한일청구권협정 때 끝낼 일도 없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일본이 스스로 자기모순적인 얘기를 하고 있을 때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서 웃으며 대한민국 외교부의 밑바닥을 보여줬다. 이는 외교적 참사다.”

Q. 제3자 변제안과 한일정상회담으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바라는 일본의 사과와 거리가 멀어졌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해법들과 현재 상황에 대한 생각은?
“대통령의 가장 큰 책무는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제3자 변제안은 사법주권을 포기한 결과다. 2018년 우리나라 대법원에서 일본 피고기업이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을 대통령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법부 결정을 행정부 수반이 마음대로 해석하는 건 삼권 분립을 무시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2018년 판결의 근본적인 취지는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 그 과정에서의 강제동원이 반인도적 범죄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일본은 2018년 판결 자체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하며 강제 동원은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나와 있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합법이었다면 합법적인 정부에 대항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반국가단체가 되는 것이다. 해당 발언 자체가 헌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탄핵 사유다. 

우리 정부가 나서서 가해자를 면책하는 것이다. 더불어 배상책임도 뒤집어 쓴다는 말이다.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고 민족을 팔아먹는 것이다. 한일 관계 복원은 무엇을 위한 한일 관계인가. 실체 없는 추상적인 것을 쫓아가서 피해자들의 권리를 묵살하고 짓밟는 게 국가인가. 강제동원되고 78년이 지났는데도 사죄 한마디 못 듣고 있는 피해자를 제물로 삼아서 관계를 복원시키겠다고 한다. 피해자들 권리를 묵살 시키면 한일관계는 복원되는 것인가.”

Q. 일제강제동원피해자 법률 대리인단이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 제3자 변제안 거부 문서를 전달했다. 거부 문서에 기재된 내용은 무엇인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이 사건과 이해관계가 전혀 없고, 그 기관이 제3자 변제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피해자들이 제3자 변제안을 허용할 뜻이 없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Q. 앞으로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현 정부의 태도가 앞으로 일본에 사죄를 촉구하고 배상을 요구하는 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일본으로서는 윤석열이란 좋은 파트너를 만나 묵은 숙제를 한 번에 해결한 것이다. 일본은 전범 국가라고 불리는 게 목에 든 가시같이 삼킬 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이 불편한 상황이었는데 우리 정부가 제거해 준 것이다.

역사 문제에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뒤틀린 역사, 외교 문제를 바로잡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과욕에 의해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 해명에 의하면 이번 협상은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외교는 무언가 얻기 위해 하는 것인데 무엇을 얻기 위한 협상이 아니었으면 그걸 왜 하나. 구상권은 피해자 개인, 국민 개인이 가지는 고유한 권리다. 대한민국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은 권리를 대통령이 포기하라고 할 권한이 없다. 정부는 지금 발을 내디딜수록 수렁으로 빠질 것이다. 신중해야 한다.”

Q.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서는 어떤 활동을 이어갈 예정인가?
“피해자들이 명백히 반대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어렵게 싸워온 분들이다. 현 정부의 외교가 관철되지 않도록 국민과 함께 싸워나가겠다. 외교부가 개별 피해자들 설득 작업을 시도할 것 같다. 검토를 거쳐서 필요하면 법률적 대응을 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부가 ‘미래청년기금’이라는 장학금으로 본질을 왜곡하려 한다. 설사병 환자한테 무좀약 치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사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엉뚱한 미래 세대 이야기를 하며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우롱이고 모욕이다. 청년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줄 필요가 있다. 그러한 목소리가 할머니와 함께하는 힘이 된다. 

피해자들은 과거 사람들이 아니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사건이고 우리가 살아갈 미래다.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면 주변에 학살, 인권유린, 전쟁, 폭력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 회복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우리들의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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