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윤석열 정부는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 사건에 대해 이른바 제3자 변제방안을 제시하여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 사건에서 우리 대법원이 피해자에 대한 사법적 구제를 인용한 것은 우리나라 전환기 사법 문제(transitional justice)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이며,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 전체를 살피더라도 기억될만한 판결이다.

이 판결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침해에 관하여는 가해자가 보상하여야 하며, 이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되는 것이 아님을 선언한 것이다. 개인의 권리를 국가 간의 협정에 의해 국가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는 당연한 법리를 재확인한 것인데, 일본 정부도 일본 국민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개인 배상을 청구하였을 때에는 ‘국가 간 협정에 의해 개인청구권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취하였던 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판결이 중요한 것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불법적이었음을 선언하였다는 데 있다. 극심한 피해에 비해 얼마 안 되는 배상금의 지급을 일본 극우세력이 극구 저지하고 있는 이유도 한반도 지배가 합법이었다는 자신들의 주장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판결은 3ㆍ1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하는 우리 헌법 질서에 기초하고 있다. 필자는 민법 전공자이지만,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방안이 민법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는 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 반헌법적인 성격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민법 제469조에서는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도,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채권자인 피해자들이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상황에서 제3자의 변제는 법적으로 효력이 없고, 정부에서 추진하는 제3자 대위변제의 해법으로 풀릴 수 없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이미 제3자 대위변제 방식으로 문제를 풀자고 하는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 방안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피해자들의 공감과 동의를 받는 것을 전제로 논의하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방식 해법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피해자의 의사를 도외시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데 있다. 

윤석열 정부 해법의 또 다른 문제점은, 피해자들의 동의는 물론이고 채무자인 일본기업의 동의도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일본기업이나 일본 정부가 이 방안에 동의하여 우리 재단이 대신 변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경우에는 어쨌든 ‘종국적 변제자’가 일본기업이나 일본 정부가 된다. 그런데 일본기업이나 일본 정부가 우리 재단의 대위변제를 동의하면, 이는 강제동원 피해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나아가 구상권 문제도 남는다. 이에 일본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대위변제 방식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면서도, 정작 우리 재단의 제3자 변제에 공식적으로 동의하지는 않고 있는 기이한 상황이다. 채권자도 채무자도 동의하지 않는 방식이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강제동원사건의 대법원 최종 판결을 부당하게 지연시킨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이 있었다. 그때 대법원장을 구속시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자신이 그 대법원판결의 집행을 저지하고 무력화하고 있다. 자기모순이라는 비판은 차치하고, 대통령은 최소한 역사 앞에 겸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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