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문학권 마을, 충효동
군사정권 아래 아픈 역사 공존

삽화 이지민
삽화 이지민

광주 곳곳에는 광주만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장소들이 있다. 곳곳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자 <전대신문>이 여러분의 문화도시 광주 탐방을 함께한다. 탐방의 첫 번째 순서는 광주를 지키는 산, 무등산이다.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이다. 광주는 전라도에 있는 큰 고을이다. 이 산에 성을 쌓았더니 백성들은 그 덕으로 편안하게 살며 즐거이 노래를 불렀다.’ 이는 ‘무등산’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가장 첫 번째 기록인 「고려사」의 일부다. 무등산 안에 위치한 덕에 평안히 살았다는 광주시민들. 무등산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찾기 위해 기자는 ‘무등산국립공원’과 맞닿은 광주 북구 충효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래가 절로 나오는 풍경

조선 전기 무등산자락에는 선비들의 노랫소리가 가득했다. 지난달 25일 기자는 홀로 그 노랫소리를 찾아 무등산 가사문학권으로 향했다. 2km 전부터 친절히 표지판이 있어 정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표지판을 따라 돌계단을 오르면 ‘푸름을 사방에 가득 둘렀다’는 뜻의 ‘환벽당’이 보인다. 환벽당은 관직에서 물러난 문인 김윤제가 한가로운 생활을 즐기며 제자를 키웠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10년간 공부한 그의 제자가 바로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이다.

'담양에서 지어진 가사 18편'
'담양에서 지어진 가사 18편'

정철이 무등산자락에서 지은 가사가 궁금해져 곧바로 충효동 바로 옆에 위치한, 담양군 가사문학면의 ‘한국가사문학관’을 찾았다. 정문에 적힌 “가사문학면에서 지어진 가사작품은 총 18편이다”는 설명을 읽으니, 새삼 이곳의 정취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전시실에서는 모의고사 지문에서 지겹도록 마주했던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 눈에 띄었다. 정철은 무등산을 마주보는 작은 산인 ‘성산’의 식영정에서 성산과 무등산의 경치를 노래했다.

“인생 세간(속세)에 좋은 일 많건마는/어떠한 강산(자연)을 갈수록 낫게 여겨/적막 산중에 들고 아니 나오시는고./송근을 다시 쓸고 죽상에 자리 보아/잠깐 올라앉아 어떤가 다시 보니/하늘가에 떠 있는 구름이 서석대(상서로운 돌)를 집을 삼아/들락날락 하는 모양이 주인과 같지 않은가./창계 물결이 정자 앞에 둘러 있으니/천손운금(은하수)을 뉘라서 베어 내어/잇는 듯 펼치는 듯 야단스럽기도 야단스럽구나.” - 「성산별곡」 해석본 중(中)

식영정에서 바라본 구름이 드나드는 무등산 서석대의 모습을 즐기는 정철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김덕령 장군을 기리는 충효동

기자는 충효동으로 돌아와 김덕령 장군을 기리는 ‘충효역사마을’을 찾았다. 장군으로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김덕령은 무등산자락에서 태어나 20여세까지 무등산에서 말달리기, 활쏘기 등 무술을 연마했다. 김 장군이 태어날 때 심었다는 왕버들 나무들은 마을을 지키는 상징물이다.

광주의 환경운동가 고(故) 박선홍 선생의 저서 <무등산>에 따르면 지왕봉 정상에는 김 장군이 뜀질을 하며 담력을 길렀다는 ‘뜀바위’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 장교 한 명이 “뜀바위에서 나도 김덕령처럼 뛰어다닐 수 있다”고 하다 추락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왕봉은 무등산 정상의 봉우리 중 하나로, 현재는 군부대가 주둔해 있어 오를 수 없다.

 

군사정권 아래 일어난 비극들

주남마을의 깊은 곳에는 5·18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있다.
주남마을의 깊은 곳에는 5·18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있다.

충효동에서 40여분을 달리면 반대편 무등산자락에 주남마을이 있다. 주남마을은 1980년 5월 21일부터 무등산 산등성이에 주둔해 있던 공수부대가 광주와 화순을 오가는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 곳이다.

마을 입구에는 5·18 사적지 표지석과 주남마을이 역사마을로 꾸려진 과정을 그린 그림이 세워져 있었다. 사건이 설명된 사적지 표지석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져 짧게 묵념한 후 마을을 걸었다. 마을에 조성된 ‘인권테마길’의 △민주 △인권 △평화 세 가지 주제의 비석을 지나면 5·18 희생자 위령비를 볼 수 있다. 이유도 모른 채 자동차에 총격을 당한 무고한 시민들, 차에서 살아남았지만 뒷산으로 끌려가 살해당한 청년들을 생각하니 공포와 동시에 슬픔이 밀려왔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아주 오래 전부터, 무등산은 광주를 지켜왔다. 광주시민들은 무등산을 어머니산인 ‘진산’으로 소중히 여기며 국립공원과 국가지질공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만들었다. 무등산자락을 걸으며 찾은 이야기들은 무등산이 광주시민에게 큰 영향을 미쳐왔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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