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기본권마저 보장 못 받는 돌봄노동자 문제 다뤄
내년 시·도 사회서비스원 지자체 보조금 전액 삭감 

삽화 문주희
삽화 문주희

"30분을 쓰는 건 사치였어요. 눈을 마주칠 시간도 없고 서로를 알아갈 시간은 전혀 없지요. (…) 제 근무시간은 7시부터 오후 3시까지였어요. 하지만 늘 시간이 밀려서 8시까지 일을 해야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제 보험이 3시까지만 커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시간 이후에는 위험을 모두 제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지요. (…) 저는 매니저에게 그만두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어요.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이 이래선 안 된다고요. (…) 매니저는 다 비용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비용 제약하에서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이라고 말이에요.”

책 <사랑의 노동> 속 켈리는 방문 간병 회사에서 일하는 간병인이다. 켈리의 인터뷰는 돌봄노동과 돌봄노동자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 모습을 통해 돌봄노동 지원 예산 삭감, 저임금, 과잉 노동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이어지는 질 낮은 돌봄을 볼 수 있다.

저자 ‘매들린 번팅’은 5년간 병원, 진료소, 시민단체 등 돌봄노동 현장을 직접 방문해 간호사, 사회복지사, 간병인, 환자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취재했다. 각 목차는 시민단체 속 장애아동의 부모, 병원의 간호사, 간병 회사의 간병인들이 겪는 돌봄노동 현장과 실태를 보여준다.

저자는 모든 사람이 “타인의 돌봄에 의해 형성된 존재”라고 말한다. 가장 가까운 돌봄노동 현장은 가정이다. 부모가 아이를, 형제자매가 서로를 돌보며, 자녀가 부모를 돌보기도 한다. 돌봄은 또한 하나의 일자리이기도 하다. 다만 목욕, 식사, 청소 등의 일은 아주 일상적이라 쉽게 당연시된다.

돌봄노동이 필수노동으로 인식되어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저자는 코로나19가 “우리의 신체가 얼마나 취약한지, 우리가 다른 이들의 돌봄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고 있는지 절감하게 했다"고 말한다. 팬데믹으로 돌봄에 대한 수요는 이전보다 증가했다. 물론 사회적인 요인도 존재한다. 길어진 수명과 장기 질환자의 증가가 바로 그것이다.

 

꼬리를 무는 만성적 저임금과 예산 삭감 문제

늘어나는 돌봄에 대한 수요와 달리 국가는 퇴행하고 있다. 책 속 곳곳에서는 예산 삭감 문제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책 속 방문 간병 회사에서 일하는 간병인 패멀라는 “이 일의 가장 큰 단점은 낮은 보수다”며 “그 부분은 솔직히 화가 난다”고 말한다.

지역 당국이 사회적 돌봄 예산을 줄인 방식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엄격하게 만든 것이다. 두 번째는 외주 돌봄 서비스 업체 지원 비용 삭감이다. 이는 직접적인 문제다. 돌봄노동자의 임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수만 명의 사회적 돌봄 인력은 만성적 저임금에 시달린다.

이 문제가 책 속, 타국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시·도 사회서비스원 운영 예산 중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전부 삭감했다. 그 금액은 148억 3,400만원이다. 시·도 사회서비스원 예산은 본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절반씩 부담한다. 정부는 중앙사회서비스원 예산은 늘렸으나 시·도 사회서비스원 예산은 전액 삭감한 것이다. 이는 지자체가 관련 예산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돌봄공공성확보와돌봄권실현을위한시민연대는 지난달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상대로 “예산 심의 과정에서 시·도 사회서비스원 운영 예산을 전액 복원해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회서비스원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및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지원사 등 돌봄 종사자들의 처우 향상과 노동환경 개선을 목표로 한다.

 

돌봄 경제의 불편한 진실, 돈 부족은 인력 부족으로

‘돈’ 문제는 돌봄노동자 인력 부족 문제를 야기한다. 저자는 “매년 돌봄노동자의 거의 절반이 그만두는데, 이는 재앙 수준으로 높은 이직률이다”고 말한다. 돌봄노동자의 수가 줄어들며 남아있는 돌봄노동자 1인이 맡는 업무는 늘어났다. 그러면서 한 개인에게 사용하는 시간의 양은 줄어들고, 깊은 관계맺음은 어려워졌다.

책 속 니콜라는 말한다. “때로는 시간에 맞추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약을 챙기고, 씻는 것을 돕고, 침대 시트를 갈고, 세탁기를 돌리고, 세탁물을 꺼내고, 아침식사 준비까지 다 해야 하거든요.” 업무량에 비해 쏟을 수 있는 시간과 노동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질 높은 돌봄노동을 제공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돌봄노동 그리고 돌봄노동자의 현실이다.

우리가 ‘돌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로 저자 매들린 번팅은 “돌봄은 성인, 천사, 영웅의 일이 아니다”고 한다. 돌봄은 다층적이고 섬세한 일이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성도 갖는다. 책은 “단순히 노동이 아닌 ‘관계맺음’으로서의 돌봄노동”과 “그러한 돌봄이 제공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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