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중항쟁(5·18)이 올해 43주년으로 ‘사과의 해’가 됐다. 전우원씨와 특전사동지회가 광주를 찾아 고개를 숙였기 때문이다. 전우원씨와 특전사동지회의 사죄에는 많은 말들이 있지만 예년보다 오른 5·18에 관한 관심이 ‘반짝 관심’으로 되지 않길 바랐다.

다시금 43주년이라는 연도를 되새겨 본다. 작년 전공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5월 18일에 수업을 듣던 그날, 교수님은 5·18재단에서 제공하는 퀴즈를 풀어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런데 조용한 우리의 반응이 적잖이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교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아무리 큰 의미를 가지고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넘어가면 현실이 아니라 역사가 된다”고 말했다. 눈빛으로는 ‘너희에게도 5·18은 과거구나’라고 말하는 듯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전남대에 왔다. 매일 걷는 거리가 5·18 사적지고 수업 시간에는 5·18에 대해 배운다. 산책을 하고 싶으면 집 근처 5·18기념공원을 걷고 지금도 5·18 기사를 쓰고 있다. 하지만 5·18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한순간 느꼈던 감각을 희미하게 만든다.

전우원씨 또한 1997년생으로 5·18을 겪은 세대가 아니다. 그는 전씨 일가에서 갈려 나온 물줄기로, 그의 사과가 전씨 일가의 사과를 대표할 수 없다. 심지어 학살자 전두환은 평생 광주를 능멸하다 죽었기에 영영 가해자의 사과는 받을 수 없게 돼버렸다.

그럼에도 전우원씨의 사과는 오월 어머니들의 마음에 닿았다. 3월 31일 광주에 와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겉옷으로 묘비를 닦는 전우원씨에게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인 김길자 여사는 "나이도 어린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두렵고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까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다른 오월 어머니들도 전우원씨에게 “외갓집이라 생각하고 자주 오라”며 손을 잡거나 포옹을 했다.

전우원씨의 사과는 현실이고 오월 어머니들의 고통도 현실이다. 43년이 되었더라도 우리는 부모 형제를 잃고 자식을 잃은 5·18을 현실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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