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올라 소비 심리 위축…“가격 묻지만 사는 사람 적어”

사진은 지난 19일 양동시장 입구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보고 있는 한 시민의 모습.
사진은 지난 19일 양동시장 입구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보고 있는 한 시민의 모습.

“시장 유동 인구도 적고 매출은 작년 구정 때보다 훨씬 줄었어요.”

광주 말바우시장에서 참기름 가게를 운영하는 오아무개(36)씨의 말이다. 기자는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우리 대학과 가까운 △말바우시장 △양동시장 △대인시장을 돌아봤다. 그중 두 곳은 설 대목임에도 시장을 방문한 손님도 적고 명절의 활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로 기존의 물가 상승률과 비교했을 때 약 3%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설날을 맞아 고기와 과일 등의 성수품과 그에 따른 부자재의 수요가 늘었다. 또한 한파로 인해 난방비 등 하우스 관리비용이 증가하면서 전반적인 생활물가가 상승했다. 

가파른 물가 상승의 영향은 재래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원재료 가격 상승에 소상공인들의 부담은 늘고 서민들의 지갑은 굳게 닫혔다. 40대 주부 ㄱ씨는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 차례상 차리기가 힘들다”며 “채소와 과일이 싼 곳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고물가로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바구니 물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재래시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참기름 비싸 구매 망설여
지난 16일 찾은 광주 말바우시장에서는 찾아오는 손님도 적고 문 닫은 가게도 많아 설날 대목의 활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가오는 설날을 대비해 가판대에 곡식과 채소 등을 진열한 가게도 있었지만, 가득 채워진 가판대에 비해 가게를 찾는 손님은 적었다. 옆 가게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상인도 있었다. 물가상승에 대한 상인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찾아간 한 채소가게에서는 “장사도 잘 안되고, 하나라도 더 팔려면 대답해 줄 시간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시장 유동 인구수를 묻는 말에 버섯을 파는 시장 노점상도 손을 저으며 응답을 피했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참깨 한 되(600g)는 16,000원으로, 전년 대비 1,000원이 올랐다. 참기름 상인 오씨는 “물가가 오르면서 깨값도 함께 올라 참기름 가격을 올리게 됐다”며 “손님들은 부가 재룟값은 생각하지 않고 요즘 참기름이 너무 비싸다고 말하며 구매를 망설인다”고 속상해했다.

한산한 말바우시장 일부 거리의 모습. 사진은 지난 16일.
한산한 말바우시장 일부 거리의 모습. 사진은 지난 16일.

수산물 상황도 마찬가지다. 수산물 중 장기간 변화가 없던 아귀 역시 가격이 올랐다. 생선가게를 운영 중인 유아무개(53)씨는 “오른 물가 때문에 손님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된 것 같다”며 “시장 대부분 작년보다 가게 사정도 좋지 않고 명절 분위기도 덜하다”고 말했다.

말바우시장에서 그나마 손님이 오가며 활기를 띤 곳은 정육점이었다. 시장 입구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년간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아무개씨는 “아무래도 설날이다 보니 가족과 함께 먹을 고기를 사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작년보다 손님이 준 것은 맞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가가 오르고 코로나의 여파로 경제 사정이 나빠져 한우보다는 돼지고기나 호주산 소고기를 사가는 손님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물가정보의 전통시장 가격정보에서 가장 물가가 오른 품목은 축산물류다. 1월 둘째 주 기준 소고기 A+ 등심 한 근(600g)은 78,000원으로 전년 대비 8,000원이 올랐고, 소고기 A+ 살치살 한 근(600g)은 95,000원으로 전년 대비 25,000원이 올랐다. 반면 돼지고기는 삼겹살 한 근(600g)은 14,000원으로 전년 대비 1,000원이 감소했다. 목살도 전월 대비 1,000원이 감소했다. 정육점을 찾은 ㄴ씨는 “아무래도 설 대목이다 보니 고기가 비싸다”며 “그래도 가족들도 먹이고 설을 보내려면 비싸도 사 먹어야지, 다른 방법이 없지…”라고 말했다.

물가 상승으로 제사상 간소화
대인시장 역시 비슷한 분위기였다. 가판에 진열된 건어물과 수산물을 구경하는 손님은 있었지만 선뜻 지갑을 열고 구매하는 손님은 적었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자 상가 임대 안내문이 붙은 상가들이 눈에 띄었다. 헐린 건물, 굳게 닫힌 상가들은 설 대목임에도 가라앉은 시장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사진은 지난 18일 대인시장 건어물 가게에서 말린새우를 구경하는 한 시민의 모습.
사진은 지난 18일 대인시장 건어물 가게에서 말린새우를 구경하는 한 시민의 모습.

대인시장에서 30년간 건어물을 팔고 있는 김아무개(72)씨는 “예전에는 요맘때 손님도 많고 물건도 더 다양했다”며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서 잘 팔리는 멸치랑 마른 새우, 재래 김 같은 거만 앞에 꺼내놓지만 그래도 손님이 많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노점에서 콩나물을 구매한 한 주부(53)는 “예전에는 재래시장에서 당근과 양파 등 채소를 구매했지만, 요즘은 대형마트에서 구매한다”며 “아무래도 물가가 오르기도 하고 대형마트가 세일도 더 많이 해서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벤처 기업부 소상공인시장동향에 따르면 전통시장의 작년 12월 체감경기 BSI(경기실사지수)는 54.0으로, 작년 11월 대비 4.0p가 하락했다. 체감경기는 △고객 수 –5.7p △매출 –5.0p △자금사정 –3.4p △비용상황 –3.0p 순으로 감소했다. 체감경기 악화 이유로는 △경기가 좋지 않아서 38.7% △유동 인구와 고객 감소 25.3% △날씨 등 계절적 요인이 24.9%로 나타났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김성택(55)씨는 “제사상에 필요한 사과나 배도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물가 때문에 제사상을 간소하게 차리는 경우가 많아 손님도 없고 매출도 줄었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이어 “날도 춥고 곧 설인데도 대목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고 언 손을 비비면서 말하고는 기자 손에 귤 두 개를 얹어 주었다.

한 시민이 지난 18일 대인시장 떡집에서 떡을 고르고 있다.
한 시민이 지난 18일 대인시장 떡집에서 떡을 고르고 있다.

가격만 묻고 사는 사람 적어 떨이로 판매
“곶감이 쌉니다, 싸요. 찾는 거 있어요? 이리 와봐, 싸게 줄게.” 

설과 가까운 날인 지난 19일 찾아간 양동시장은 이전에 방문한 말바우시장, 대인시장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양동시장 입구부터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과 과일을 구매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싱싱한 해산물과 가격을 흥정하고 있는 손님과 상인의 모습은 설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줬다. 

홍어를 손질하는 상인과 이를 기다리고 있는 시민의 모습. 사진은 지난 19일 양동시장.
홍어를 손질하는 상인과 이를 기다리고 있는 시민의 모습. 사진은 지난 19일 양동시장.

수산물 가게들을 지나 앞으로 가면 직접 홍어를 손질하고 포장해 주는 가게들이 보였다. 홍어를 팔고 있는 ㄷ씨는 “우리 시장에서 홍어가 유명하고 시장이 아니면 홍어를 먹기 힘들다”며 “물가와 상관없이 손님이 밀려 바쁘다”고 서둘러 대답했다. 시장 곳곳에는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다니며 장을 보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설을 맞아 시장에 장을 보러 온 40대 주부는 “물가는 많이 올랐지만, 시장에서는 가격을 흥정할 수 있어 좋다”며 “정겨운 사람 냄새도 나고 설 분위기도 느끼기 위해 방문했다”고 말했다. 가는 가게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상인들은 끊임없이 오는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기 바빠 질문에 대답해 줄 시간이 없어 보였다. 채소가게 김아무개(66)씨는 “양동시장이 광주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 손님이 많아 보이지만 구경만 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라며 “채소는 신선도가 중요한데 요즘은 가격만 묻고, 사는 사람이 없어 떨이로 팔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호떡을 사 먹기 위해 시장을 방문한 ㄹ(23)씨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장 보러 오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시장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아무래도 물가도 많이 오르고 젊은 사람들은 대형마트를 주로 이용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 또래 친구 중 시장에 다닌다는 친구는 못 봤다”며 “이대로 전통시장이 사라질까 걱정된다”고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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