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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순이여!’ 되돌아보다■ 기억해야 할 역사 ‘여순사건(10.19.)’
전대신문  |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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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09  22: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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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 15일경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 1개 대대를 편성해서 출동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10월 19일 오후에 출동명령이 떨어지자, 14연대의 일부 병사들은 ‘제주도토벌출동거부병사위원회’를 만들어 세력을 규합한다.그리고 10월 19일 이들은 제주4·3을 진압하기 위한 제주도초토화 작전 출동을 거부하고 ‘동족살상 거부’, ‘미군 철수’를주장하며 무장봉기하여 여수· 순천으로 진출한다.

14연대 군인들은 여수 지역 진보적인 시민들과 함께 인민위원회를 설치하여 지하에 있던 식량 배급과 친일파 민족반역자 반동세력 처단 등의 조직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여수를 장악한 군인들은 김지회 중위의 지휘 아래 1948년 10월20일 아침에 2,000여 명이 순천으로 진출했다. 1948년 10월 20일 순천경찰, 인근 광양, 고흥 등에서 지원 나온 경찰 병력, 우익 청년 단원 수백 명과 14연대 군인들의 첫 전투가 벌어지고 14연대 군인들이 승리하게 된다. 이후 10월 20일 오후 3시경 순천은 14연대 군인들에게 완전히 장악된다.

정부는 10월 21일 여순사건을 ‘반국가적 반란’이라고 규정하고, “모든 지도자는 물론 남녀 아동까지라도 일일이 조사해서 다 제거하라”는 담화문을 발표한다. 10월 25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 13호로 여수·순천에 계엄령이 선포된다.

10월 27일 토벌군은 육· 해·공군 합동 작전을 통해 함포를 앞세우고 여수를 점령함으로써 봉기는 일단락되지만, 이 과정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여 시내가 거의 불타버려 초토화된다.

이러한 무자비한 진압과정에서 군인·경찰뿐만 아니라 1,000여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다. 특히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은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죽어 나가는 크나 큰 희생을 당한다.

/감수=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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