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장유진 기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누구인가?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국내의 젊은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90년대 대학을 다니고 사회과학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들에게는 꽤 친숙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 전개된 한국사회성격논쟁에서 이른바 민중민주혁명(PD)파의 이론적 주춧돌이었다. 그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된 이후 그는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공론장에서 거의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맹위를 떨치고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세계 도처에서 극우 정치의 온상으로 기능하게 되면서 발리바르는 다시 유령처럼 국내에 되돌아왔다. 왜 대중들은 스스로 예속당하는 것을 욕망하는지, 왜 가난한 이들은 스스로 연대하는 대신 부자들을 위해 서로 증오하는지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는 이가 바로 발리바르이기 때문이다.

발리바르의 사상적 이력은 외관상 크게 두 개의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려 했던 그의 스승 루이 알튀세르의 이론적 문제설정에 기반을 두고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원칙 및 주요 개념들을 쇄신하려는 작업을 수행하던 시기다(1960년대~1970년대 말). 두 번째 시기는 알튀세르가 착란 속에서 부인을 목졸라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유폐된 이후 역사적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하면서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1789)에 대한 재독해에 의거하여 급진 정치철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시기다(198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는 현대 유럽 이론가들 중에서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끊임없이 참조하는 드문 이론가이고, 인종과 민족 또는 국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거의 유일한 사상가이며, 알튀세르 사상의 현재성을 고수해온 유일한 인물이다.


이데올로기론을 개조하기
1980년대는 발리바르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을 시도한 시기였다. 우선 발리바르는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이데올로기 개념의 동요에서 찾는다(??대중들의 공포?? 참조). 곧 고전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적 모순을 다른 사회적 모순들이 근거해야 하는 중심적이고, 심지어 유일한 모순으로 간주했으며, 더욱이 이를 진화주의나 종말론적인 역사철학에 따라 사고했다. 그리하여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사고되거나 아니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결정적인 투쟁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맹목은 곧바로 파시즘과 나치즘의 집권이라는 대가를 낳았으며, 결국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붕괴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발리바르의 진단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의 스승인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개념과 호명(interpellation) 개념에 입각하여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론을 개조하는 데 핵심적인 진전을 이룩했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여전히 난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는 역사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데올로기가 역사적으로 전개되고 위기와 전환을 겪는 과정을 충실하게 분석할 수 없었다. 둘째, 그의 이론은 이데올로기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재생산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경제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지만, 이데올로기가 다른 물질적 모순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는 제대로 사유하지 못했다.

따라서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쇄신은 발리바르가 1980년대에 시도했던 마르크스주의 탈구축의 핵심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그는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공동으로 저술한 ??인종, 국민, 계급??(1988)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맹목점으로 남아 있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국민형태(nation form) 개념을 제안한다. 국민형태라는 개념은 프랑스, 러시아, 독일 같은 국민 공동체를 자연적이고 초역사적인 공동체로 간주하는 가상에서 벗어나, 국민의 역사적 형성과 재생산, 전환 과정을 계급투쟁과 결부시켜 사고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국민형태 개념은 한편으로 국적=시민권 개념과, 다른 한편으로 허구적 민족체(fictive ethnicity)라는 또 다른 개념과 연결된다. 국적=시민권은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국적을 가진 성원에게만 부여해온 근대 국민국가의 경향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는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표현된 보편적 민주주의 원칙을 제한해온 근대 민주주의 정치체의 한계를 드러내준다(??정치체에 대한 권리?? 참조). 또한 허구적 민족체는 국민국가의 배타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적 국민 공동체가 마치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초역사적 민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처럼 제시하는 가상(‘단군의 자손’과 같은)을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개념들을 통해 발리바르는 근대 국민국가의 모순과 함께 그 변혁의 방향을 사고하기 위한 이론틀을 마련한다.


스피노자와 함께 정치를
??스피노자와 정치??(1985)에 집약되어 있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연구는 계급 관계로 환원될 수 없는 대중운동의 철학적 기초를 탐색하는 데서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그는 네그리와 더불어, 하지만 또한 네그리와 매우 다른 관점에서 스피노자 다중(multitude) 개념의 독창성에 주목한 최초의 연구자였다. 네그리가 다중을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이해한다면, 발리바르에게 다중 개념은 방법론적 개체론과 전체론을 넘어서는 관개체성(transindividuality)을 사고하기 위한 원천이 되며 민주주의의 양면성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관개체성 개념은, 사회적 관계는 원자적인 개인들로 구성되지 않고 국가나 국민 같은 초개인적인 전체로 구성되지도 않으며, 따라서 사회적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개인이나 국가 같은 추상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개인이나 국가는 스피노자가 다중이라고 부르는 사회적 갈등 관계 속에서 생성, 재생산, 전환을 거듭한다.

또한 다중은 민주주의와 관련한 스피노자의 이중적 태도를 집약적으로 드러내주는 개념이다. 한편으로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를 “가장 완전한 정체”로 규정하며, 모든 국가의 토대를 “다중의 역량”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치론?? 이곳저곳에서 다중으로의 복귀를 어떻게 해서든 피해야 하는 위험 또는 파국적 상황으로 묘사한다.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이러한 모순적 태도에서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다.

첫째, 스피노자에게 다중으로의 복귀는 아나키, 곧 사회적 관계의 해체를 뜻한다. 따라서 이는 폭력과 갈등의 폭발을 의미하며, 개인들에게는 생명과 안전의 위협을 뜻한다. 자연 상태와 유사한 이러한 아나키 상태에서 개인들의 평등과 자유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는 결국 스피노자가 민주주의 및 정치적 관계 일반을 본질적으로 취약한 것, 또는 선험적인 토대가 없는 것으로 간주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하지만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를 거부하지 않고 다중을 통제나 억제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다중을 모든 국가의 토대로 제시한다. 이는 스피노자에게 정치란 초월적(가령 신)이거나 자연적인 토대(가령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에 기초를 둘 수 없으며, 오직 대중들의 집합적인 실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뜻한다. 곧 스피노자에게 민주주의는 오직 제도들 및 집합적 실천의 결과로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발리바르는 민주주의는 법적인 관점에서 규정된(곧 군주정이나 귀족정과 구별되는) 하나의 정치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갈등적인 과정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기존의 민주주의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민들의 봉기 운동인 ‘민주주의의 민주화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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