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장유진 기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20세기를 살았고 20세기의 사상가이지만 동시대적 인물이다. 그의 글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너무나도 유명한 학자라 그를 소개하는 것도 새삼스럽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문제적’ 철학자였고, 담론의 사상가였으며,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푸코는 1926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1984년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나라의 프랑스 문화원에서 근무했고 1960년 클레르몽페랑 대학 철학과 교수로 임용되었고 1970년에는 꼴레쥬 드 프랑스의 교수로 선임되어 <사유 체계의 역사> 강의를 담당했다. 그는 현실 문제에 대해서 개입하고 발언한 실천적 철학자였으며 동성애자였다. 2012년에는 푸코의 아카이브가 프랑스의 국보(tr?sor national)로 지정되었다.

푸코는 어렵다?
호주의 한 대학의 설문조사에서 미국의 인류학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학자를 물었을 때, 칼 마르크스와 더불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언급한 인물은 미셸 푸코였다. 인류학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어떤 사람도 미셸 푸코를 비켜가기는 힘들다. 푸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선호를 떠나서 푸코의 글에 대한 주위의 독자들은 공통적으로 난해하다, 어렵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저술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읽기를 권유하면서도 쉽지 않다고 하니 어찌된 영문일까?

현대 프랑스 철학자치고 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라고 말한다면 어찌할 도리는 없다. 하지만 그의 글이 어려운 것은 프랑스 철학자이기 때문만도, 어려운 용어 때문도, 프랑스어의 번역 때문도 아닌 것 같다. 사실 그가 어려운 것은 그가, 그의 말이, 그의 책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익숙한 사고방식을 심문하고 우리의 믿음을 배반하면서 독자를 난처하게 만든다. 그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만 어떤 해답을 주지 않는다. 글의 구성조차도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뉘어서 이론적 논의, 문제 제기, 논증과 입증, 정리와 주장의 형태를 띠지 않는다. 푸코가 낯선 다른 이유는 그가 우리의 사고가 기초로 삼는 것들, 즉 국가, 경제, 자본, 정치, 이성, 주체, 사랑 등을 하나의 실체로 전제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러한 추상적 개념은 단단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관계의 효과와 기능으로 그 모습을 나타낸다.

푸코는 우리 지성과 사고 틀의 기원과 역사를 탐색하고 논의하면서 우리 사유의 뿌리를 헤집어 놓았다. 정상인과 비정상인, 이성과 비이성은 어떻게 구별되고 다뤄졌을까? 근대성의 탄생과 밀접하게 연관된 제도인 감옥과 정신병원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근대성(modernity)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풀어 가기 위해, 즉 현대적 사유의 기원과 계보를 탐구하기 위해 그가 들여다본 시대는 서구의 르네상스의 시대가 저물고 고전기로 접어들던 시대에서 19세기까지이다.

푸코는 이 근대에 형성된 지식과 권력의 협동적 작동, 섹슈얼리티로 가득 찬 삶, 주체를 생산하는 근대적 장치들을 촘촘하게 기술한다. 우리가 탈근대 사회에 살던 그렇지 않던 근대(성)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 한 푸코의 자장(磁場)에서 벗어나기를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푸코는 동시대적이다.

푸코와 사귀는 법
그는 매력적이지만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일까? 어떻게 하면 그의 글과 친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굳이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참신하고 새로운 많은 논의들에서 푸코는 끊임없이 언급된다. 내가 대학을 다니면서 처음에 읽은 푸코는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감시와 처벌』(1994)[1975]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시시콜콜한 감옥과 형벌의 역사적 사실을 왜 그렇게 난해하게 펼쳐놓은 건가? 푸코를 스타로 만들어준 『말과 사물』(1986)[1966]을 읽으면서 나는 절망했다. 도무지 글을 이해할 수 없었고 정리할 수도 없었다. 서구 언어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일까? 프랑스 현대 철학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것일까? 푸코에 대한 전기, 연구서를 읽으면서도 이 부족함과 갈증을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학위 논문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익어가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 쓰고자 하는 글이 조금 더 명료해졌을 무렵 읽은 꼴레쥬 드 프랑스에서 강의를 정리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의 글이 통찰력과 지적 해방감을 선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푸코를 읽는 것이 즐거워졌다.푸코를 읽은 모두가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마다 푸코와 가까워지는 길들을 찾았을 것이고 아마도 여전히 필독서로 간주하면서도 읽지 못한 책,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으로 남아있을지 모른다. 주변에서 푸코를 읽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 듯하다. 자신의 전공이나 관심사와 관련된 저작을 여러 번 정독하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푸코의 저작을 연대기 순이나 주제별로 차근차근 읽는 방법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의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고 특히 강의록을 추천한다. 한국에는 『비정상인들』(동문선, 2001),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동문선, 1998), 『주체의 해석학』(동문선, 2007), 『안전, 영토, 인구』(난장, 2011), 『생명관리정치의 탄생』(난장, 2012)이 출간되어 있다.

푸코의 평전과 소개서와 연구서는 도서관과 서점에 좋은 책들이 있다. 디디에 에리봉이 쓰고 박정자씨가 번역한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 2012)[1989]는 푸코에 대한 가장 충실하고 권위있는 평전으로 알려져 있다. 푸코의 사상 중 권력론에 대한 짧은 논의는 양운덕씨의 『미셸 푸코』(살림, 2003)가 있고, 이정우씨가 번역한 『담론의 질서』(중원문화, 2012) 2부 ‘푸코 사상의 여정’에서도 푸코의 논의를 포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103인의 현대 사상』(민음사, 2003)에도 짤막하게 푸코가 소개(이정우 집필)되어 있고, 미셸 리샤르가 쓰고 양운덕이 번역한 『오늘의 프랑스 사상가들』(문예출판사, 1998)에서도 푸코의 논의가 잘 정리되어 있다. 영어권에서는 ROUTLEDGE 사의 출간하고 사라 밀스가 쓴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앨피, 2008), 푸코의 핵심 논의를 중요한 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싣고 있는 GRANT PUBLICATIONS 사의 『푸코』(웅진지식하우스, 2008)도 한글본이 있으니 읽어봄직 하다. 개인적으로 푸코의 책에 대한 탁월한 설명과 해석으로 권하고 싶은 글은 최정운씨의 「푸코의 정신병 역사의 사상적 의미」(1994)와 「푸코의 눈: 현상학 비판과 고고학의 출발」(1995)이다.이솝의 여우와 포도의 우화에서 여우가 아니라 새로운 사유의 맛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양식화된 사고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푸코는 언제나 든든한 길동무다. 다음 글에서는 푸코가 한국에 소개된 배경과 그의 논의를 몇 가지 텍스트를 제시하여 정리하고 푸코의 현재적 영향력을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 박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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