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가르치고 사랑 나누는 수녀…“충만하고 의미 있는 인생 살아가길”


작은 사랑이 모이고 모이면 세상은 따뜻해지고 사회는 변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랑’만이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우리 대학 동문 이경민 수녀(국어국문학·72)를 만나 그가 말하는 ‘사랑’에 대해 들어봤다.

사랑 배웠던 어린 시절
이경민 동문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몸이 약해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어린시절 동생과 다툼 도중 동생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겁을 먹어 숨어있었다. 어머니는 동생을 다치게 한 그를 혼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이가 동생이 다쳐서 크게 놀랐을 텐데 야단까지 맞는다면 얼마나 더 마음이 아프겠냐”며 화가 나있는 어머니를 말렸다. 이 때 그는 ‘사랑의 감정’을 처음 느꼈다.

이 동문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가 고등학생이 됐을 무렵 집안에 위기가 닥쳤다. 이 시기를 그는 “어려움이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한 순간 등을 돌리는 사람들에게 실망도 했고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도 했던 시기였다. 집안이 기울어지고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그의 집에 몰래 쌀가마니가 배달되는 것을 보며 이 동문은 “부모님들이 평소 쌓아 오신 덕을 느낄 수 있었다”며 “그래도 아직 세상은 따뜻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민주화’의 봄을 꿈꾸다.
이 동문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놓고 망설였다. 그 때 그의 어머니는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지만 배우는 데는 때가 있다. 학비는 우리가 대줄테니 대학에 가서 공부하라”며 진학을 권유했다.

이 동문은 시인을 꿈꿨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은 그에게 “시를 써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는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좋아 우리 대학 국문과에 입학했고 학보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 동문은 치열했던 학보사 기자 생활을 ‘시대를 고민했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그와 함께했던 학보사 기자들은 유신치하 현실에 비분강개하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 고민하던 동료들이었다. 대학생활시절 이 동문은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교수들은 그 시절 세상을 향해 분노하던 학생들을 말렸다. 이 동문은 “교수들은 시대의 아픔을 통감하면서도 학생들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투쟁을 말렸을 것”이라며 “이는 어쩔 수 없는 씁쓸한 시대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암울했던 그 시절 함께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의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과 죄가 없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교사에서 수녀가 되기까지
졸업 후 이 동문은 성요셉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과 교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신과의 관계에서 채워야하는 부분임을 깨달았다. 그는 마음 속 한 켠을 신에 대한 봉사와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이 동문은 수녀로서의 삶을 결심했다.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힘들고 아픈 사람들의 상처와 고민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고 위로하고 싶어졌다.”

그가 이 길을 걷기로 한 이후 주변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대학원에서 지도받았던 교수도, 함께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동료도 그녀의 결정을 섭섭해했다. 동료는 “사회가 이렇게 힘든데 너만 현실을 도피하려는 것 아니냐”라고 물었다. 그 물음에 이 동문은 “형은 세상을 큰 삽으로 변화시키려 하지만 나는 작은 호미로 꽃밭을 만들고 싶다”며 “나는 이 세상을 작은 사랑으로 바꾸겠다”고 답했다. 이 동문은 현재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작은 호미는 사랑이다. 사랑만이 희망이다. 사랑만이 우리의 힘이고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사람들을 깊이 담을 수 있는 도구는 사랑이다.”

그녀는 수녀로 생활하면서 여러 활동을 했다. 성요셉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시작해 교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이후 그녀는 중국에서 장애인 어린이집을 돌보며 원장으로 근무했다. 또 장애인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특수교육학도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장애인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등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기도 했다. 현재 그는 소명여고 교장으로 근무하며 또 한 번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어른들이 먼저 아이들을 보듬어야
요즘 시대의 아이들은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친구들과 경쟁을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주목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소외받기 일쑤다. 이 동문은 성요셉여자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인성교육과 학력신장 사이에서 무엇을 중시해야할지 고민하던 때 한 지인이 이 동문에게 했던 말을 기억했다. “수녀님,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우리학교에서마저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 아이들은 누가 보듬어주느냐”라는 물음이 그녀의 가슴을 울렸다.

이 동문은 아이들이 모두 행복해 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모든 인간은 소중하고 마땅히 사랑받아야 할 존재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지 않고 기성사회의 입시위주교육에 대한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현재 혁신학교가 생겨나는 등 “희망은 보인다”고 말했다. ‘변화의 씨앗’은 자라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대학 후배들에게 “인생을 돌아봤을 때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길 바란다”며 “아무리 사회가 험하고 살기 힘든 세상이 와도 ‘사랑’만이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고 사랑을 했을 때 오는 충만감은 내 안의 보물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조언 했다.

이경민 동문은 ▲1976 우리 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6 성요셉여자고등학교 국어과 교사 ▲1977 사랑의 씨튼수녀회 입회 ▲1991 성요셉여자고등학교 교장 ▲1997 우리 대학 국문학 박사 ▲2002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강사 ▲2009 우석대 특수교육학 석사 ▲2003 중국 연변대학교 과학기술대학 한국어과 교수 ▲2011~ 소명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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