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류학’ 대두…사회·문화·철학과 연계 연구 필요

의료인류학은 문화인류학과의 깊은 연관 속에서 발전해 왔다. 인류라는 하나의 종(種)이 각각의 지역과 사회에서 드러내 보이는 다양한 문화의 스펙트럼(spectrum)에 매료되었던 문화인류학자들은, 또한 각각의 문화가 가진 각각의 전통의료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어떤 의료가 담지하고 있는 인간관, 세계관은 그 의료가 행하여지는 문화의 많은 부분을 이야기 해 주었기 때문에 그 문화의 의료를 공부하는 것은 그 문화를 연구하는 아주 효과적인 접근법이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물질적 토대에 지극한 관심을 보이는 서양의학이 그 의학을 만들어 낸 서양문화의 물질주의에 대한 방점을 말해주는 것과 같다). 또한 인류학자들은 일상 문화에 스며들어 있는 의료의 영향력을 목도해 왔다. 저리다, 쓰리다, 욱씬거리다, 뻐근하다 등 우리는 우리의 문화에 깊은 토대를 둔 통증 표현으로 아프고, 그 표현으로 의사와 소통한다. 한의학의 기(氣) 개념은 ‘감기’, ‘울기’, ‘활기’, ‘기가 막힌다’ 등의 표현에 녹아 들어와 있는 우리 일상의 일부다.

의료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려는 행위들 또한 문화적으로 규정된다. 한국사회에서 의료정보를 수집하고 가족들의 의료적 대처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어머니들이다. 그래서 병원가기 싫어하는 남편들은 부인들에 이끌려서 내원하는 문화가 한국사회에서 관찰된다. 5,000원이면 1차 의료 기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한국에는 의료쇼핑이라는 문화가 있고, 천문학적인 치료비가 무보험자들에게 부과되는 미국에는 아파도 병원 안가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 그 동안의 현지조사(현지에서 연구대상 문화를 참여, 관찰하는 문화인류학의 대표적 연구방법론)를 통해서 의료가 가진 문화와의 철저한 연관을 고찰해 온 인류학자들은 의료인류학이라는 용어 속에 문화의 개념을 충분히 포함시켜 놓았다. 그래서 의료를 바라보면 그 의료가 속한 사회가 심층적으로 투영된다. 그래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라는 소아정신과 질환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교육문제가(ADHD약이 공부 잘하게 하는 약이라는 루머가 반증하듯), 부모 자식 간의 관계의 변화가(자식의 문제가 의료전문가에게 맡겨지는), 그리고 지구화가(1990년대 미국에서 급격히 확장된 ADHD 진단이 2000년대 태평양 건너 한국까지 확산되는) 논의 된다.

의료와 문화의 착종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던 현상이지만 지금의 시대만큼 광범위하고 심화된 시대는 없었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도 건강과 의료에 대한 이슈는 한국인들의 초미의 관심사라고 할만하다. 이러한 관심의 와중에 의료관련 광고가 신문 광고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명절 선물로 건강보조 식품 주고받는 문화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넘치는 의료관련 기사, 뉴스들은 의료의 이름으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규정해 나가고 있다. 과거에 인류학자들은 문화연구의 한 방식으로 의료를 연구해 왔지만, 지금은 인류학자들이 의료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의료가 당대의 문화에 광범위하게 그리고 심층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의료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이 더 많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에 대한 사회문화적 접근법은 인류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접근법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우리의 삶과 갈수록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의료를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봄으로써 의료가 우리의 삶에 개입하는 방식을 조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법은 또한 철학적 논의와도 연결된다. 필자가 요즘 진행하고 있는 한의학의 현상학적 바탕에 대한 연구는 인류학과 철학의 연결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인식의 주체로서 몸을 강조하는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논의는 특히 한의학 진단의 인식론을 잘 설명한다. 이러한 철학적 논의는 의료인류학 연구를 더욱 다양하게 하는 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문화적 주제와 함께, 철학적 주제와의 연관을 통해서 의료인류학은 인간에 대한 물음을 여러 측면에서 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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