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굿이브닝, 굿나잇.”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짐 캐리)이 폭풍우를 뚫고, 세상 밖(세트장 밖)으로 나와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작별을 고하듯 한 말이다. 자신이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는 줄 아는 트루먼은 사실 본인의 일거수일투족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사는 현실이 어떻게 조작되고, 통제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트루먼이 갖고 있던 물 공포증도 아버지의 익사라는 장치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조지 오웰이 1949년에 1984년을 상상하며 쓴 소설 『1984』 역시 이와 같은 감시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소설 속 1984년 영국 런던은 세계 전쟁의 중심 도시이다. 이 도시는 철저히 ‘텔레스크린’을 통해 감시되고 있으며 곳곳에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라고 쓰인 포스터가 붙어 있다. 주인공 윈스턴은 뉴스를 조작하는 일을 하다 감시사회에 불만을 품고 비밀조직과 접촉한다. 하지만 이내 발각되고 모진 고문을 당한 윈스턴은 견디지 못하고 권력에 굴복한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라는 말로 소설은 끝이 난다.

감시사회가 위험한 것은 그것이 전체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감시사회가 극에 달해 전체주의적 얼굴을 드러낼 때 윈스턴의 모습이 그러했듯 ‘다름’은 인정되지 않는다.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쓴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도 인간의 ‘다름’마저도 권력에 의해 통제된다. 모든 인간은 인공 수정을 통해 태어나고 계급이 결정돼 다른 환경에서 자란다. 이곳에서는 육체적, 정신적 쾌락도 권력에 의해 제한되며, 심지어 고통을 느끼는 것마저 통제된다. 말 그대로 불행이 없는 멋진 신세계다.

이 세계에서 자연 분만에 의해 태어난 ‘야만인’ 존이 “자유와 선과 죄를 원합니다. …… 전 불행한 권리를 원하는 셈이죠”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