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위기 극복, 광산업 새 시장 개척…이익 사회 환원도 앞장

혹자는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 말한다. 언뜻 보면 맞는 말 같지만 과연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삶의 방식엔 정답이 없지만 나름의 정답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 “인생은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배려하며 사는 것이다”는 신념하에 일생을 바쳐온 남자. 바로 인간 존중 경영 철학으로 최고 경영자란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는가를 보여준 김국웅(법학·58) 동문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삶
김 동문은 어렸을 적엔 전후의 시대적 영향을 받아 어렵게 지냈다. 소위 ‘보릿고개’의 연속이었다. 가난은 김국웅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는 학창시절에 또래와 어울리는 걸 즐겼고 학업을 홀대하진 않았지만 우등생은 아니었다. 김 동문은 서중, 광주 공고를 졸업하고 58년 법학과에 입학한다. 그는 “당시 법 공부를 해보고 싶었고 고시를 합격해 입신양명하겠다는 결의가 있었다”라며 입학 동기를 밝혔다. 그의 대학시절은 ‘민주주의와 고시 공부’로 정리된다. “대학 시절엔 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많이 보고 토론을 많이 했었고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요.” 그는 대학 졸업 후 3년 간 배수진을 치고 고시 공부를 했다. 그 당시 ‘고시에 떨어지면 사업을 한 번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고. 후에 김 동문은 젊은 혈기로 사업에 필요한 것들을 몸소 느끼기 시작했다. 영업사원, 복장업 사업, 학원 경영 등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개인 사업에 매진했다. “이 당시 많은 경험이 기업 경영 철학을 제공해준 것 같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다
73년 김국웅은 주식회사 무등의 전신인 무등수지라는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에 열심히 다니던 와중 84년에 회사 부도가 난다. 그는 회사의 보증을 선 상태였기에 모든 채무를 다 인수하고 회사를 재건하기로 결심했다. 김 동문은 “참 이 때를 떠올리면 삶 자체가 치열했었다”며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살리려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직원들과 한 마음으로 회사 재건에 매진한 결과 무등(주)은 우뚝 일어섰다. 이후 무등은 지속적인 인재육성, 연구개발, 공정개선, 품질향상 등을 통하여 전기·전자제품의 소재인 열 수축성튜브를 밧데리 제조회사 또는 전해콘덴서 제조회사 등에 공급함으로써 내실 있는 초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열수축성튜브를 콘덴서용, 배터리용, 형광등용, 식품포장, 기타 등에 공급하고 있고 중국천진, 무석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지금은 세계 시장의 약 30%를 점유하고 있다.

끊임없는 혁신과 노력으로 비상
김 동문은 늘 깨어있었고 기회는 찾아왔다. 무등을 운영하던 김국웅은 전남대 연구소가 개발한 평판광회로기술(PLC)을 사업화하기 위해 98년 (주)우리로광통신을 설립했다. 광산업에 대한 선견지명으로 제품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완성품이 나오긴 쉽지 않았다. “수년 동안 제품이 제대로 안 나오다 보니 기술 노하우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점차 나갔고 스스로도 엄청난 실의에 빠져 있었지요.” 김 동문은 또 한 번의 큰 시련을 맞이했지만 다시 긍정적인 마음으로 남아 있는 사람과 일심동체가 돼 제품 생산 방법을 달리하고 재료도 바꿔봤다. 이러한 끊임없는 투자와 노력 끝에 제품화에 성공한 것은 2001년. 이후 시장이 형성되는 데에도 7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2003년이면 형성될 줄 알았던 시장이 2006년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탄탄하게 일궈 놓은 무등까지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강에 빠질 생각까지 했었다"고 한다. 기다리던 시장은 2007년에야 열렸다. 통신업체들의 초고속 광통신망 구축이 시작되자 9년간 기술력을 쌓아 온 우리로광통신은 날개를 단 듯 고속 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우리로광통신의 제품은 SK브로드밴드 독점공급 등 국내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가 주력하는 것은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해외 시장이다.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 북미, 유럽 등 우리로광통신의 진출 반경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김 동문은 "제품의 품질을 결정짓는 빠른 속도를 내면서도 네트워크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인데, 우리로광통신의 분배기는 손실이 제로에 가깝다"며 "경쟁사를 크게 앞선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수출 시장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현재 동조업계에는 국내 3사를 포함해 세계 5개 업체만이 진출해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아 국내 업계의 가격경쟁력과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우리로광통신은 해외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내년 하반기까지는 생산설비와 인력 확충 등 투자를 지속해 2015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는 광산업의 선도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동문은 앞으로 계획에 대해 묻자 “힘 닿는데까지 우리로광통신과 무등의 경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전했다.

 


인간 존중은 처음과 끝을 만든다
젊은 시절의 새로운 분야 개척, 기업 운영 시 찾아온 두 번의 시련 끝에 김 동문은 확고한 경영 철학을 세웠다. 바로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회발전 기여와 직원 복리 증진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효 실천’, ‘시간활용의 중요성’, ‘예의범절’,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 지향’,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선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강조한다. “기업은 사람이다”, “정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믿음으로 전 임직원이 가나안농군학교에 입교, 인성을 중시하는 배움에 과감한 투자를 실행하고 있다. 또 “비전이 있는 사람만이 비전을 만든다”라는 명제 하에 삶의 질 향상 및 근로의욕을 고취코자 회사의 중장기경영계획과 연계해 개인비전기술서를 작성하고 직원들의 교육과 복지에 중점을 뒀다.

그는 ‘상생의 노사화합으로 열린 기업문화’를 추구한다. 노사가 하나라는 인식하에 기업 구성원들의 교육 훈련, 복리후생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가족동반 격년제 전 사원 해외연수, 직원 휴양시설(리조트) 운영, 격주토요휴무제 실시, 직원자녀 학자금지원, 연 2회 사보 발행, 사원아파트 무상임대, 환경정화활동을 겸한 산행훈련, 직원들의 정서를 함양하기 위한 양서 배포 등 복리후생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또한 매년 경영실적을 전 직원에게 공개하고 전 직원이 자발적으로 임금 및 근무조건을 결정토록 하는 임금대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열린 경영의 선구자적 역할은 중소기업의 모범사례로 자리 잡았다.

그는 회사 성장의 주요 요인에 대해 “직원들의 교육을 통한 인간 존중 실현이라 생각한다”며 “연구인력에 의한 꾸준한 기술개발과 품질향상 노력도 한 몫 했을 것”이라 밝혔다. 또 거래 시 신의성실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러한 원칙은 해외 기업들과의 오랜 거래를 유지케 했다. 김 동문과 직원들은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함은 물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이뤄나가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 등을 통해 약자를 돕고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제가 우리로 광통신을 설립할 시에 가졌던 신념입니다.”

인내와 겸손을 바탕으로 끝까지 해봐야
그는 “요즘 학생들을 보면 너무 편한 것만을 추구한다”며 “남들이 하기 어려운 것을 한 번쯤 경험해보고 인내심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뭐든지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봐라는 말이다. “맘에 안 맞는 것도 수용해 노력을 통해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기 능력이 커지는 것이지요. 많은 걸 체험하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갖추십시오.”

김국웅은 ▶1939년 광주 출생 ▶1958년 법과대학 입학 ▶1984년 10월~ (주)무등 대표이사 회장 ▶1993년~1999년 광주․전남 이업종교류연합회 부회장 ▶1999.3~2001.10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동창회 회장 ▶1998.12.29 우리로광통신(주) 설립 ▶1999.4~2009 제 3대 광주․전남 무역상사협의회 회장 ▶2000.3~ 한국광산업진흥회 부회장 ▶2001.10.08 (주)무등, 우리로광통신(주) 회장 취임 ▶2003.4~2004.6 대통령자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 ▶2007~2009.2 제28대 전남대학교 총동창회 회장 ▶2008.1~ 광주YMCA 재단이사장 ▶2007.12.03 한국 무역의 날 산업포장 수여 ▶2010.11~2013.11 중소기업진흥공단 ‘월드클래스 기업’ 선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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