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든 크게 하자’ 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는 신재식 동문은 강한 카리스마와 좌우명만큼 화통했다. 신 동문은 현재 교보정보통신 대표이사로, 회사 사원들을 양성해 일본의 도시바와 같은 회사에 전문 인력을 파견시키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 시절엔 다양한 경험 쌓아야

대학 시절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 주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자주 마셨다. 공부는 비록 잘 하지 못했지만, 여행을 다니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군대를 제대한 후부터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공부를 시작했다. 특히 일본어학과인 만큼 일본어 공부에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신 동문은 대학을 다닐 때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아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사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그 당시 같이 이야기 했던 친구들중 사업가가 많다”며 “어렸을 때 꿈을 크게 가지고 생활하다 보니 이 자리에 올라오게 된 거 같다”고 웃으며 전했다.

늘 경영자의 꿈을 가져

대학을 졸업한 후 전공을 살리기 위해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받으러 떠난다. 신 동문은 “연수를 통해 일본에서 사업에 필요한 매너, 문화, 어학 등을 많이 배웠다”며 “일본이라는 나라는 겉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속을 보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어학연수를 다녀와 소프트웨어 회사인 한국전산 주식회사(현 교보정보통신)에 입사해 1년도 되지 않아 일본으로 발령 받는다. “전공과 다른 분야를 선택해 어려운 점이 많았다”는 신 동문은 “회사가 기술자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처음에는 기술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며 힘들었던 시기를 이야기 했다. 이 때 다른 기술자들을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동료나 선배들의 도움으로 단기간 내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때의 상황을 생각하던 신 동문은 “인생은 크게 봐야한다는 생각으로 순간의 달콤함을 중요시하지 않았다”며 “그때의 힘든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고 전했다.
신 동문은 항상 ‘경영을 하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다녔다. 신 동문은 ‘30대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40대를 좌우한다’고 생각해 월급의 반 이상을 투자해 골프를 치러 다녔다. 그는 “당시 만났던 일본인에게 고급정보와 그때 나이에 겪지 못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웠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다른 사람들이 엄두를 못 낼 일을 해가며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또한 다른 사원들은 여가시간을 어학공부에 매진했지만, 그는 일본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경제신문을 보거나 다른 공부를 했다. 신 동문은 10년 동안 기술직에 근무한 후 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20대에는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해야 한다”는 신 동문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20대 후반에는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30대에는 자신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야 한다”고 전했다.
“회사를 단기간 내에 그만두고 옮겨 다니는 사람은 쳐다보지 않는다”는 신 동문은 “20대에는 용서가 되지만, 30대에는 용서가 되지 않는다”며 “경영진이 봤을 때 이러한 사람들은 확실한 인생의 목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하나의 틀에 막힌 나라

신 동문은 일본의 식사문화나 비즈니스적인 매너라든지 문화적인 면이 달라 고생을 많이 했다. “한국은 정이 많고 술을 마시고 헤어질 때에 기분 좋게 헤어지지만 일본인들은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도 헤어질 때에는 얼굴표정이 싹 변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인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을뿐더러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다”며 “일본의 국민성과 미국의 개인주의가 만나 독립적인 문화가 생성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일본은 모든 것들이 완벽하고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나라이다 보니 하나의 틀이 생성 되어 버렸다는 신 동문은 “주말에 동네를 둘러보면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모두들 실내에 마련되어 있는 수영장이나 다른 문화시설을 이용한다”며 “이러한 틀에 박혀 생활을 하다보면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 비해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매너도 있고 길이나 골목도 깨끗한 것들을 보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또한 그는 “일본에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일본스타일로 변했지만 그 근본은 변하지 않고 있다”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내가 할일 있어 일본에 있는 것

신 동문은 ‘일본에 언제까지 머물 것이냐’의 질문에 “일본은 내가 일을 하기 위해 있는 곳”이라며 “일이 없다면 언제든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고 전했다.
한미 FTA같은 경우, 물건들만이 오고 가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이 협상이나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이 필요로 한다. 그는 “이 시대는 하나의 마켓이 형성 된 것”이라며 물건과 지식, 사람까지 모두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신 동문은 “나도 마켓의 일부분”이라며 “앞으로는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는 인구가 적어 마켓을 형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삼성의 휴대전화 같은 경우 세계를 대상으로 디자인을 하고 제품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삼성이 만든 휴대전화기를 외국에 수출을 한다면 제품 안에 장착된 칩 하나의 교체만으로 그곳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1억5천만 이라는 인구가 하나의 마켓을 형성하고 있어 글로벌 한 시야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은 이를 많이 반성하고 있다”며 “한국인들이 이점을 많이 배워야 한다”고 했다.

비즈니스에서 인간관계는 필수

비즈니스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혼자 할 수도 있겠지만 “범위가 작다”는 신 동문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혼자 회사를 꾸려나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자신의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야 하며, 비즈니스 사업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인간관계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신 동문은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꿈은 크게 잡고, 목표는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며 “모든 사회가 하나의 마켓을 형성하듯이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대에는 많은 경험을 통해 글로벌한 시야를 가져야 한다”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20대 후반에는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30대에는 자신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야 한다”고 전했다.
도쿄 = 박민규 기자 minku023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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