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석 교수는 D램 반도체 사업의 주역으로 일했지만 성과에 대한 압박감과 조직문화의 불편함으로 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대학에 와 자기 분야를 연구하고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강릉대에 왔을 때 신설학과에 초기화도 안 된 상황이었다.
 

▲ 강릉대 조명석 교수
조명석 교수는 “연구실도 실험실도 교수도 하나인 곳에 학과 운영을 위해 발로 뛰어 다녔다”고 했다.
신설학과의 입학생이 졸업생이 되며 취업전선에 들어갈 때, 학벌주의 사회에서 지방대생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조명식교수는 지방대라는 불리한 학벌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미국 명문대학원을 진학하는 길을 택했다.
 

조 교수는 “초반에 졸업생들을 알음으로 취업을 시켰지만 이 후에는 잘 되지 않았다”며 “취업 한 선배도 많지 않아 악순환이 반복돼 남들이 인정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유학을 생각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조 교수가 처음부터 유학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대기업과 국내 명문대학원을 지원했지만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학벌주의 벽에 막혀 학생들을 전혀 진출시키지 못했다.
 

그렇게 유학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처음 여러 학생을 접촉했을 때, 대부분 자신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유학 준비 대상자를 고르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졸업하는데 한 학기를 남기고 취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휴학을 해 전문학원에서 프로그래밍 전문가 과정을 밟겠다는 학생이 상담을 위해 찾아왔다.
 

조 교수는 “‘학생에게 전문학원에 간다고 취업이 잘 될까’하는 부정적인 말을 하자 나가려고 했다”며 “‘그 학생에게 왜 미국 명문대에 가서 공부할 생각을 하지 못 하느냐’는 푸념 섞인 말을 했는데 그 말에 학생이 유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휴학을 보류하고 유학 준비가 시작됐다. 하지만 남은 1학기 동안 토플과 GRE(미국 대학원 입학 자격 시험) 공부를 해야 했다. 조 교수의 유학 경험을 되살려 입학 신청부터 추천서를 받는 일 등 거의 모든 절차를 함께 진행했다. 한 학기 동안 조명석 교수와 학생이 열심히 준비한 덕에 합격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첫 유학생을 배출했지만 학생들에게서 유학에 대해 관심을 이끌지 못했다.
 

그 이후 미국 유명대학원의 합격생은 그 이후에도 배출이 됐다. 합격생이 매년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많은 학생이 아니라 학생들은 그 합격한 선배들이 대단해서 일뿐 자신이 유학을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조명석 교수는 “처음에 합격생이 나오고, 간간이 명문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이 나왔지만 일반학생들은 그 학생들이 특별히 잘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했지 자신도 할 수 있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와중에 체계적인 시스템을 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 교수는 “전공에 대한 자신감, 하고자 하는 의욕, 영어 수준 향상이 미국 대학원 진학의 삼두마차이다”며 “영어는 조직적인 프로그램 운영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2000년 1월부터 시작된 게 ‘전자공학과 방학 영어 프로그램’이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40여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다른 과에서도 듣고 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영어교육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 토익, 토플 학습교재 등 이것저것 방법을 바꿔가며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와중에 참여한 학생들이 힘들어 나가기도 했지만 조명석 교수는 방법을 바꿔가며 학생들의 영어실력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이게 좋다고 생각하면 다른 걸로 바꾸고 5~6번 정도 바꾸었다”며 “초창기 학습 노하우는 먼저 겪은 학생들이 몸으로 때워 쌓인 것들이다”고 했다. 조 교수의 노력 덕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줄고 학습 환경이 좋아졌다. 나중에 BK21사업의 지원으로 학과 내·외부 전문 강사를 초빙하며 프로그램을 제대로 갖출 수 있었다.
 

또한 BK21 사업으로 2002년 여름에 캐나다로 단기해외어학연수를 함께 다녀온 왕보현 교수가 캐나다에서 여러 정보를 접해 유학에 대한 가능성을 인식하며 유학 프로그램에 동참하게 된다. 왕보현 교수와 함께 진행하며 유학 프로그램을 조직적으로 운행하고 서로 일을 분담하게 돼 더 견고해졌다.
 

2003년에 합격생을 여러 명 배출하게 되면서 학과 내에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현재 꾸준히 늘어 2006년에는 총 정원 80명 정도의 학생중 14명의 합격생을 배출해 냈다.
 

조명석 교수는 “일류대는 일류기업에 많이 들어가 선배가 와서 조언도 해주고 후배들이 자극을 받아 선순환의 선·후배 관계가 전통으로 섰지만, 지방은 일류기업에 간 학생이 많지 않고 정기적이지 않아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다”며 “길이 놓이면 되지만, 선배가 없고 정보 역시 없어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유학도 선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조 교수는 대학에 대해 “입시를 치르고 난뒤 대학생활은 중요한 시기이다”며 “4년을 배운 것은 평생 벗어나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취업해도, 직장을 옮겨도 그 계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며 “그 길이 평생 길이 될 가능성이 높아 중요하지만 학생들은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누구도 인생은 자기가 전공한 것에 반복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며 “요즘에 전공은 뒷전이고 딴 길을 찾지만 전공을 열심히 하면 길이 있다”고 했다.
 

조명석 교수는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게 특성화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며 “우리나라에서 주로 생각하는 특성화는 우수 학과 등 전공분야를 떠올릴 수 있지만 이는 어느 대학이든 있고 실질적으로 학생에게 도움 주지 못 한다”고 했다. 그는 “소비자 중심으로 이익을 받을 수 있도록 특성화를 해야 한다”며 “교육 부분에서 학생 들을 잘 가르치는 방식을 특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학은 대부분 연구 중심으로 교육 중심이 많지 않다”며 “미국에는 학부 위주로 된 곳이 있는데 이는 교육중심으로 논문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우리 나라도 제도적으로 교육부에서 대학이 연구중심과 교육중심 중에 선택하라고 해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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