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철 동문은… ▶1986년 경영학과 졸업 ▶1986년~ 미국 휴스턴 ‘한국일보’, LA ‘중앙일보’, ‘한국일보’ 기자 ▶2003년 샌디에고 한국일보 기자 

 

 

 

 

 

 

 

 

 

 

 

 

 

 

 

 

 

 

문종철 동문은…

▶1986년 경영학과 졸업

▶1986년~ 미국 휴스턴 ‘한국일보’, LA ‘중앙일보’,

             ‘한국일보’ 기자 

▶2003년 샌디에고 한국일보 기자


미국 샌디에고서 기자로 맹활약

봉사하는 마음으로 기자, 무료법률상담, 법정통역사 일까지


 경영학과 79학번 문종철 동문

벽에는 각종 광고와 스크랩된 글, 책상마다 수북이 쌓인 신문들 묶음, 다양한 종류의 비싼 카메라와 삼각대들로 둘러싸인 작은 사무실. 한눈에 기자가 일하는 환경임을 짐작할 법한 샌디에고 ‘한국일보’지사에서 기자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대학 경영학과 출신 문종철 동문과의 귀한 만남을 가졌다.

문 동문은 LA 오렌지 카운티 ‘한국일보’에서 편집과 논평을 담당하는 에디터 일을 하다가 3년 전 샌디에고 ‘한국일보’지사로 발령받아 현재 지역 언론발전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다.

문 동문은 “처음 샌디에고에서 일했을 당시 샌디에고의 한국일보는 중앙일보보다 4년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선호기반이 취약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언론에 대한 이해도 미비했 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 결과 지금은 언론 인식정도가 많이 향상되었다”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하면 유난히 계산을 잘해 경영학 쪽에 자질이 있을 것 같아  전공을 선택했다는 문 동문에게 기자라는 직업은 우연으로 다가왔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86년 9월 아내의 권유로 미국 휴스턴으로 건너온 문 동문은 보험설계사를 하던 지인으로 ‘한국일보’ 기자채용에 응시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학창시절 글쓰기 대회에서 장원의 경력이 있었던 그는 ‘내가 본 휴스턴’이라는 수필로 당당히 합격했으며 이후에도 LA로 건너와 중앙일보, 한국일보에서도 기자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실무경력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사회에서 비주류 층 ‘한국인 출신’기자의 취재활동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식료품 및 잡화점에서 발생한 한국인 살인사건을 취재하면서 ‘안전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굴뚝같은 생각’, 사건사고 현장에서 피해자가 한국인임을 먼저 물어보면, ‘한국인만 신경 쓴다며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언성높이는 백인을 상대할 때, 아시안 기자로서는 최초로 18개 샌디에고 시정부연합회 대표들과 동행하여 멕시코로 취재하러 갔을 때 ‘왜 왔느냐’식의 푸대접을 받았을 때 마다  때때로 ‘주류사회 출신이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문 동문은 “경찰국장을 취재하러 간적이 있었는데, 처음에 대하는 태도가 시큰둥 했었다”면서 “그러나 경찰국장보다 직급이 훨씬 높은 하원의원이나 판사 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여 줬더니 이내 태도가 공손하게 변하면서 옷까지 단정하게 갈아입고 취재에 응했었다”며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문 동문은 ‘기자는 글을 통해 검사역할과 동시에 판사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읽고, 생각하면서 현명한 길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한번은 판사후보의 부도덕성을 폭로해 당선을 막기도 했다.  그는 “진실을 발굴하여 쓴 기사가 여러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력을 끼칠 때 기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 동문은 기자활동 외에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무료 법률상담과 법정통역사 일도 함께 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이광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법률상식이 없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의 꿈을 키웠었다”고 말하는 그는 “행방불명된 아들을 찾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 70대 노부부를 도우면서 작게나마 그 꿈을 이룬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했다.

한편 문 동문은 학창시절의 본인을 지극히 평범한 학생으로 회상하고 있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았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생활과 공부에 별다른 재미를 못 느꼈다는 그는 “국어사전, 옥편, 사자성어 외우는 것을 좋아했는데, 돌이켜보면 이 엉뚱한 취미가 기사작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또한 문 동문은 대학시절 올바른 사회건설을 위해 부패한 정권과 맞서는 운동권 대열에 동참하여 잠시 총학생회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친구들의 추천으로 들어가게 된 총학생회는 내가 생각했던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큰 뜻을 실천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고 밝히는 문 동문은 “총학생회 간부들은 안기부 사람들과 내통하면서 ‘형님, 형님’거리며 굽신거렸고, 특히 돈과 관련된 비리가 많아 참지 못하고 활동을 그만두었다”고 지난날의 총학생회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유난히 영어에 관심이 많아 외국방송을 듣기위해 자주 인문대를 찾아갔던 경험은 오늘날 그의 영어실력의 초석이 되었다. 미국으로 건너올 때까지 에세이 한편 능숙하게 쓰지 못했던 문 동문은 ESL 중급 과정을 공부하면서 ‘실력을 키워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라는 욕심으로 악착같이 공부 했다고 한다. 또한 법정 통역사에 관심이 많아 공부한 뒤 학원을 찾아 강사자리까지 떳떳히 요구해 합격했을 정도로 늘 자신감을 갖고 공부에 임했다고 했다. 이외에도 아침마다 차안에서 미국 목사 설교방송을 30분에서 60분 동안 꾸준히 청취하고 말하는 연습도 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선배로서 기자생활을 바탕으로 쌓은 생활정보와 지혜 등을 모교의 후배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에 오고자 한다면 미국 내에 거주하고 있는 동문들과 연락하는 적극성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시절의 무분별한 술 문화로 시간낭비하지 말고 좀더 의미 있는 부분에 주목했으면 한다” 면서 “다시는 오지 않는 소중한 대학시절인 만큼 안 좋은 습관은 하루빨리 버리고 좋은 습관을 기르면서 자기계발에 신경 썼으면 한다”고 전했다.                           /노은빈 기자 kokohak@hanmail.net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