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아 동문은… ▶ 1978년 영어교육과 입학 ▶ 1988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언어학 석사학위 ▶ 1993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언어학 박사학위 ▶ 현재 미국 UCLA 언어학과 교수

 

언어학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국내 강단 성차별에 유학 UCLA 교수… “세상 넓게 보고 도전해라”


전선아 동문은…

▶ 1978년 영어교육과 입학

▶ 1988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언어학 석사학위

▶ 1993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언어학 박사학위

▶ 현재 미국 UCLA 언어학과 교수 


 영어교육과 78학번 전선아 동문

우리 대학 영어교육과 78학번인 전선아 동문은 현재 세계적으로 알려진 UCLA 언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6월 7일에 있었던 ‘용봉인의 밤’ 행사에서 전남대를 빛낸 ‘자랑스러운 전남대인’ 38명의 수상자에 포함되기도 했던 전선아 동문은 학기 중이라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학기가 끝나고 한국 언어 정보학회에서 초청을 해 한국을 방문한 그는 모교의 후배들을 위해 지난 6월 21일 언어교육원에서 ‘유학 준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기도 했다.

우리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영어영문학과로 대학원을 진학한 전선아 동문은 “지도 교수가 ‘좋은 대학원 가서 교육 잘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유학을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학교에서 조교를 하며 유학을 준비했다”며 1986년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언어학과로 유학을 떠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 계기 중 하나로 그는 ‘남녀 차별’을 들었다. 그는 “1980년대 당시 한국 대학에서 여자의 경우 조교가 끝나면 거의 학교에 남아 있기가 쉽지 않았는데 같은 실력을 가진 남자의 경우는 강사 자리 얻고 나중엔 전임 강사로의 과정을 밟더라”면서 “억울한 마음에 ‘여자가 남자보다 월등히 뛰어나면 여자에게 자리를 주겠지’, ‘미국에서 박사 돼서 돌아오면 당당히 자리 잡을 수 있겠지’하는 생각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동기와 학문적 욕심으로 그는 미국에서 많은 연구를 통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그는 “대학원에서 의미론을 공부했기 때문에 언어학 분야에서 미국 랭킹 4위인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가긴 했는데 어느 순간 언어학 방법론에 회의가 들었다”며 “추상적인 데이터 연구가 어려움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고민은 유학 생활 첫 1년 동안 필수과목 5~6과목 이수 때문에 관심 없는 분야까지 들어보면서 석사과정 끝부분에 의미론에서 음성학으로 전공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의미론과 음성학은 언어학 분야에서 서로 가장 다른 성격의 학문인데 음성학으로 전공을 바꾸는 게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하지만 좋아 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마음과 지도교수의 도움으로 음성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전했다. 전선아 동문은 “학창시절에도 영어보다 수학을 더 좋아 했었는데 그런 성향이 인문계에서도 가장 자연계와 근접한 언어학을 공부하게 된 것 같다”며 “적성에 맞고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니 언어학과 교수라는 자리까지 멀리 올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2년 반 동안 석사과정을 밟고 1988년 9월부터 박사과정을 밟은 그는 1992년 즈음에 한국에 나왔다. 그러나 한국은 그가 1986년 유학 떠날 당시의 사회적환경과 달라진 점이 거의 없었다. 전선아 동문은 “유학을 다녀온 남자 박사의 경우 1년 이내에 수도권에서 자리를 잡는 반면 여자 박사의 경우 자리 잡는 것부터 쉽지 않고 자리를 잡더라도 지방으로 가는 현실이었다”며 “결국 지도교수와 상담 끝에 미국에 머무르면서 연구하는 방향으로 바꿨다”고 아쉬웠던 그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었던 그는 미국 UCLA 대학 언어학과에서 세계적인 석학이 은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 동문은 “지도교수가 UCLA 언어학과에 자리가 비었으니 한번 지원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1992년 12월에 경험삼아 지원을 해보게 됐다”며 “다음해 1월 인터뷰, 서류 심사를 하고, 3명을 선발해 2박3일 동안 강의법, 개인별 인터뷰 심사를 하게 됐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 인터뷰가 끝나고 나오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UCLA 교수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분 좋은 예감으로 바뀌었고 그러한 예감은 정말로 적중했다”며 “UCLA에서 최종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지도교수랑 복도에서 기뻐서 폴짝폴짝 뛰었다”고 그 때 당시의 기쁨을 표현했다. UCLA는 언어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대학이고 특히 그의 전공인 음성학 분야는 UCLA가 랭킹 1위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직 박사학위도 받지 않은 나를 임용한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박사 논문이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해마다 3~4편의 논문을 열심히 썼던 것과 강의 교육 기록이 좋아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UCLA 교수가 되고 나서도 테니어(일종의 종신고용제도로 테니어를 받으면 한 대학에서 평생 강의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 일정 기간 동안 테니어를 받지 못하면 그 대학을 떠나야 한다.)를 받기 위해 5년간 3백65일 쉬지 않고 지도, 강의, 연구를 계속했고 1999년에 테니어를 받을 수 있었다.

전선아 동문은 “처음 미국에 유학 왔을 때는 외로워서 비행기만 지나가도 울었던 내가 어느새 적응해 지금은 고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렇게 교수를 하고 있다”며 “어딜 가서든 열심히 하면 길은 열려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국제학회에서 인정받는 권위자가 되기 위해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후배들에게 “전남대 학생이라는 이름표 때문에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세상을 넓게 보고 외국으로 나가 공부해보는 도전정신을 갖고 열심히 하라”며 “이 세상은 본인 하기에 따라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수현 기자 1004gam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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