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공학과 68학번 김덕기 동문 ‘美 뉴욕 동창회의 살림꾼’ “늘 모교에 관심…‘윈윈’하는것이 성공의 열쇠”  

건축공학과 68학번 김덕기 동문

‘美 뉴욕 동창회의 살림꾼’

“늘 모교에 관심…‘윈윈’하는것이 성공의 열쇠”


“1974년 미국행을 결심했다. 그 시기의 미국은 모두가 꿈꾸는 나라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발 행상부터 하나씩 시작했다”  현재 미국 뉴욕지역 우리 대학 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김덕기 동문(건축·68학번)의 이야기다.

김 동문은 미국에서 공부도 하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고 싶어 그렇게 먼 미국으로 왔다. 그가 처음 미국에 와서 한 일은 가발 행상이었다. 주중에는 뉴욕 대학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브루클린, 맨하튼에 있는 가게 앞에서 가발을 펼쳐놓고 가발을 팔았다. 그렇게 가발 행상을 1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했다. 기독교도인 그는 피곤하고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짬짬이 시간을 내어 세계 선교라는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 15년간 미국에서 캠퍼스 선교도 병행 했다. 미국에서 생업을 위해 가발행상 외에도 세탁소, 소매업, 뷰티 서플라이, 식품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았다.

그리고 20여 년 전 뉴욕 주정부에서 안전 자격증을 따서 ‘뉴욕 라이프’라는 개인 생명보험회사에 취직해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을 하면서 회사에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는 10년 정도 일을 하니 회사의 요구가 많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개인회사’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8년째 ‘김 바울 보험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보험회사를 독립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의 위험부담이 높았지만 그럼에도 그가 회사를 운영하게 된 데는 동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은 의료비가 턱없이 비싸기 때문에 의료보험이 없으면 병원에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며 “그럼에도 미국에 정착한 많은 한인교포들이 의료보험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한인사회에서 의료 보험 전문 에이전트로 활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김 동문은 “영업적 이윤 이전에 건강한 한인사회와 동포들의 삶의 질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앞선다”며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는 한인동포들이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네 명의 자식을 건강하고 성실하게 키운 김 동문은 “첫째 딸은 뉴욕 맨하튼에서 컴퓨터 회사에 근무하고 둘째는 시라큐스에서 의대에 다니고 셋째는 법대, 넷째는 가장 알아주는 여자대학에 다닌다”고 말하며 네 명의 자식들을 미국에서 아무 탈 없이 키운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그런 김 동문의 모습에서 이제는 안심하고 편히 쉬어도 든든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자식들을 다 키워서 이제 조금씩 일을 줄여가며 정리하고 있다”며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학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우리 대학 뉴욕지역 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우리 대학에서 앞으로 꾸준히 성실한 리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올 해 우리 대학에서는 개교 54주년 및 총동창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열린 ‘용봉인의 밤’ 행사에서 사회 각 분야에서 대학의 명예를 빛낸 자랑스런 동문들을 ‘자랑스러운 용봉인’으로 선정해 기념패와 메달을 수여했는데 김 동문도 이 상을 받았다. 현재 뉴욕지역 동창회장을 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총동창회 상임이사, 순천지부 동문회장 등을 하면서 동문사회에 기여한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김 동문은 “근래에 와서 동창회를 열면 20~30명 정도 되는 동문들이 모이고 연말에 파티라도 열면 70~80명의 해외에 거주하는 동문들이 모인다”며 “한 동안 침체 되어있던 해외동창회가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고 있어서 기쁘고 앞으로도 더 많이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이제 나이 예순을 바라보는 김덕기 동문은 제2의 인생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을까? 그는 “개인적인 계획으로 후손, 후배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려 하고 있다”며 “때문에 글을 잘 쓰기 위해 많은 책들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 시절 미국에 와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슴에 품은 사명을 가지고 선교활동을 했듯 “선교 차원에서 여행을 하는 것도 계획 중이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는 후배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대학은 한국근현대사에서 민주화라는 국민적 염원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 선배들이 많이 있다”며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역사적 소명의식도 가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 비쳤다.

그는 “정말 공부할 수 있는 시기는 학창 시절이니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며 “공부가 목적이 되어 열심히 하는 것보다 사회에 나가서 각각의 전문분야에서 정직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김 동문은 지금까지 살면서 돌아보면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인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공부는 잘 하지만 외골수여서 혼자만 똑똑한 사람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며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점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다. 이어 그는 “오늘날의 흐름은 세계화”라며 “세계의 사람들과 같이 사는 사회니까 모든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과 사랑으로 사람을 대할 줄 아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람을 키우는 것이 대학교육의 역할이라 생각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는 “타인을 도와주고 사랑하는 리더들을 전남대에서 양성해야 한다.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회가 경쟁사회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의 사회는 상생의 관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서로 잘 되는 윈윈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손수 커피를 준비해주고 후배들이 혹시나 불편할까봐 이것저것 챙겨주는 김 동문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떠나는 길에 기자는 그가 말했던 사람 냄새를 맡았다.                               /이수현 기자 1004gamsa@hanmail.net

김덕기 동문은…


 

 

 

 

 

 

 

 

 

 

 

 

 

 

 

 

 

 

 

 

 

 

 

 

 

 

 

 

▶ 1968년 전남대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입학, 졸업

▶ 총동창회 상임이사, 순천지부 동문회장 역임

▶ 현재 전남대 뉴욕지역 동창회장

▶ 현재 ‘김 바울 보험회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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