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들을 위한 한글교육은 하고 싶었던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한글교육은 고려인의 삶을 이해하고 내적인 보람이 아주 큰 후회 없는 일이다” 

“고려인들을 위한 한글교육은 하고 싶었던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한글교육은 고려인의 삶을 이해하고 내적인 보람이 아주 큰 후회 없는 일이다”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 우슈토베로 추방된 고려인들을 위해 27세의 젊은 나이로 우슈토베 한글학교의 교사를 역임하고 15년 째 카자흐스탄에서 한글 교육과 민족문화 연구에 앞장서고 있는 김병학 동문. 김 동문은 우슈토베 한글학교 교사, 알마타 고려천산한글학교 교장, 알마타국립대학교 한국어과 강사, 민족지 ‘고려일보’ 기자를 역임하고 2005년 시인에 등단해 지금은 카자흐스탄 한국학센터 연구원직을 맡고 있다.

1991년, 광주․전남 지역 유지들이 구소련 지역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모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카자흐스탄의 알마타와 우슈토베,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와 알말리크, 러시아 일크츠크에 한글학교를 설립했다. 소련이 붕괴되고 카자흐스탄과 대한민국의 수교가 맺어진 1992년, 김병학 동문은 고려인의 모국어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교수의 말에 감흥을 얻어 카자흐스탄으로 발을 옮겼다.

‘침울함과 회색빛의 도시’ 김병학 동문이 1992년 공항에서 바라본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타의 단상이다. 고려인 최초의 강제 이주지인 우슈토베에서 한글학교 교사는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일이었다. “고려인과의 심리적 단절감, 음식문제 등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고려인들과 접촉하고 그들의 고통과 삶을 이해하면서 새로운 인간의 맛을 느꼈다”는 김 동문은 옛 추억들을 떠올렸다. 우슈토베에서 한국어 교육의 뒤를 이은 알마타국립대학에서의 한국어 강사. 알마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1년 후에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던 김 동문은 “학생들이 ‘모든 선생님들이 떠나고 선생님마저 떠나면 어쩌느냐’는 만류에 귀국에 대한 꿈을 접고 그 학생들이 졸업하는 4년 동안을 가르쳤다”고 했다. 4년 동안 쌓인 특별한 정은 보람과 기쁨의 눈물로 보답했으니.

후에 카자흐스탄 고려인 민족지인 ‘고려일보’ 기자 생활은 그에게 좋은 선배 등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게 했다.  “1990년 고려일보의 재정난 속에서 한국에서 온 선배 기자들의 뒤를 이어 3번째 ‘고려일보’ 기자였다”는 김 동문은 “2000년 당시 모국어로 기사를 쓸 수 있는 고려인이 사라져 가고 있는 상태에서 러시아어로 나온 기사 번역, 문체 교정을 맡으며 고려인의 언어생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며 일했다”고 전했다. 또 “기자생활을 하며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았고 가장 좋아하는  철학사상이 된 ‘천부경’을 박일 선생에게 배웠다”고 했다. 김 동문은 “우리나라 전통사상인 천부경뿐만 아니라 서양철학자인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체’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고 했다. 김 동문은 고려일보 기자 당시, 러시아 공과대학 교수를 만났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 때 러시아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는 말에 공대 교수는 인문학적 교양을 쌓아 개인의 소양과 사회를 깊이 보라고 말했다”며 김 동문 또한 “기술이나 경제적 발전의 바탕에 인문학적 소양이 쌓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연구원직을 맡고 있는 한국학 센터에서 김 동문은 많은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재정난으로 많은 활동을 할 수는 없지만 카자흐스탄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을 돕기 위해 경제, 건축 용어 사전을 발행할 계획이고 구 소련지역의 고려인 구전가요를 모아 출간할 것”이라고 했다.

김 동문은 2005년 김지하, 김준태 시인의 추천으로 카자흐스탄에서 느낀 것들과 고향의 향수가 담긴 ‘천산에 올라’라는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곳에서 느낀 감정들을 시로 옮겨 부모님을 위로하고 싶었다”는 김 동문을 보며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을 떠올린다.

김 동문은 분명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아름다운 이상주의자다. “부모님의 권유로 행정학과에 들어왔지만 관심은 다른 분야에 있었다”는 김 동문은 “특별한 직업에 대한 꿈은 없었지만 막연한 3가지 꿈은 있었다”며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는 것, 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것, 막연히 문학과 관련된 작품을 남기는 것을 꿈꿨다며 두 가지는 이뤄진 셈”이라고 웃어 보였다.

 인터뷰 마지막 날에 “내가 가진 옷 세벌을 다 보여줬다”며 웃음으로 자신의 소박한 삶을 보여주고 “일부러 고독을 느끼기 위해 홀로 눈길을 걷는다”는 김병학 동문. 그는 후배들에게 “한번뿐인 지상이 삶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람되게 살아라”라고 당부했다.

장옥희 기자 sushoo@hanmail.net



김병학 동문의 약력

1965년 전남 신안군 임자도 출생

전남대학교 법대 행정학과 졸업

1992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공화국에 이주해 우슈또베 광주한글학교 교사, 알마타 고려천산한글학교 교장, 알마타국립대학교 한국어과 강사, 알마타대학교 대학원 정치사회학과 재학중, 카자흐스탄 한국학 센터 연구원. 알마타 한인민족신문 ‘고려일보’ 기자 역임

한국인기자 추모집 ‘이름도 빛도 없이’ 펴냄

2002년 재외동포재단 주최 문예작품 공모에 ‘사마르칸트의 시’ 등으로 입선

2005년 12월 김지하, 김준태 시인의 추천으로 시집 ‘천산에 올라’ 통해 문단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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