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학계나 예술계의 큰 병폐로 꼽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조로현상이다. 60대는 고사하고 50대만 넘어도 원로행세를 하는 교수들이 있다. 언제부턴가 원로교수란 말이 연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면죄부와 같은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우리나라 학계나 예술계의 큰 병폐로 꼽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조로현상이다. 60대는 고사하고 50대만 넘어도 원로행세를 하는 교수들이 있다. 언제부턴가 원로교수란 말이 연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면죄부와 같은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성재 이돈주 선생은 5개국어에 능통하며 명강의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간 다른 여러 국어학분야에서 탁월한 학술적 업적을 이루었지만, 특히 󰡔한자학총론󰡕이라는 책은 거의 전국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과에서 교과서로 채택하고 있을 정도로 독보적인 문자학 관련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 선생은 󰡔한자·한어의 창으로 보는 중국고대문화󰡕(서울: 태학사, 2006. 2)라는 새 책을 펴셨다. 2004년 전남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신 선생은 이번 책을 통해서 두 가지 거대 메시지를 전한다. 학계의 조로현상에 대한 일침이며 또한 본인의 학문세계에 대한 무한확장을 선언한 것이다.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그려진 우리 민화가 많다. 왜 우리 선인들은 하필 호랑이와 까치를 한 폭의 그림에 그려 넣었을까 항상 궁금했다. 이번 책을 통해서 선생은 이런 유형의 궁금증을 일거에 해소해주었다. 이런 그림을 일명 보희도(報喜圖)라 하며, 기쁨을 알리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과 그것은 중국어로 표범의 발음과 까치의 발음을 각각 취한 소위 해음(諧音) 또는 음차대의(音借代意)라는 원리적인 설명까지 주셨다. 20장 58절로 이루어진 이 책의 내용은 비단 이러한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세세한 설명을 망라하면서 한자·한어에 새겨진 동양인의 세계관과 인생관, 그리고 사회와 사상 전반에 걸쳐 해박하면서도 명쾌한 답을 주고 있다.

선생은 책의 서문에서 국어학, 특히 문자학 전공자로서 고대문화에 대한 책을 상재한 것을 스스로 권외의 일로 생각한다고 쓰셨다. 그러나 이는 다른 연구자라면 그 말이 해당될 법도 하다. 정년퇴임 후 오히려 자유스럽게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다는 평소 말씀에서 뭔가 새로운 저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은 했다. 그러나 문자를 넘어서 문화의 세계로까지 학문의 세계를 확장한 것은 누구라도 놀랄 일이다. 선생이 아니면 감히 이룰 수 없는 아프락서스의 비상이라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책의 제목인 󰡔한자·한어의 창으로 보는 중국고대문화󰡕는 두 가지 가치를 지시한다. 윈도우즈를 통해서 광활한 사이버의 세계로 들어가듯 한자·한어의 창을 통해서 우리는 어마어마한 중국고대문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 윈도우즈를 통해서 들어가는 세계는 중국만이 아니라 동양, 특히 한자문화권 전체의 문화이며, 동시에 고대문화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문화를 샅샅이 보여주는 광학렌즈이기도 하다.

학문이 깊으면 분야에 상관없이 철학을 낳는다. 성재 이돈주 선생의 이번 책은 문자학을 넘어서 문화학, 더 나아가 문화학을 넘어서 문화철학을 관통하고 있기에,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어문학, 사회학, 역사학, 철학, 민속학 등 동양의 인문사회학 전체에 걸쳐 유익한 자료일 것으로 믿는다. 또한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양의 지혜와 전통적 사상의 발견은 내일과 세계로의 진출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혜안을 넓힐 수 있는 영감의 지침서로서 진정 선생께서 우리에게 내린 큰 선물임을 확신한다.

나경수(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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