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피아여고, 매년 만세운동 행사 열려
사직공원 일대 일제강점기 흔적 잔재

광주 곳곳에는 광주만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장소들이 있다. 곳곳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자 <전대신문>이 여러분의 문화도시 광주 탐방을 함께한다. 탐방의 두 번째 순서는 광주의 근현대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양림 역사문화마을이다.

광주에는 100년의 시간이 그대로 남아있는 동네가 있다. 이는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역사문화마을이다. 양림동은 1900년대 초 미국의 선교사들이 찾아오며 도시화됐다. 선교사들은 △광주 최초의 종합병원인 제중원(현 기독병원) △숭일학교(현 광주시립사직도서관 일대) △수피아여학교(현 수피아여자고등학교) △양림교회를 비롯한 수많은 교회를 지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시민들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썼다. 지난 15일 기자는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살아있는 근현대 박물관, 양림동으로 향했다.

 

광주의 유관순, 윤형숙 열사

1919년 3월 10일 양림동은 독립을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시민들은 수피아여자고등학교(수피아여고)에서 양림교회까지 태극기를 휘날리며 행진했다. 그 길은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행진해 ‘아리랑 고개’라고 부른다. 기자는 역사문화마을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듣기 위해 ‘3·1만세운동길’ 아리랑 고개를 찾았다. 아리랑 고개 입구에는 숫자 3과 1, 독립운동가 등 광주3·1만세운동의 상징들로 만든 구조물이 있었다. 구조물에는 독립운동가 3인 △박애순 △윤형숙 △최흥종 독립운동가의 사진과 설명, 3·1운동으로 재판을 받은 104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들 중 가장 어렸던 윤형숙 열사는 당시 수피아여고 학생이었다.

 

학교 역사 탐방하는 학생들

지난 15일 2시경 수피아여자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3·1만세운동기념탑 앞에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수피아여고는 종교 수업의 일환으로 학교 역사 탐방 활동을 진행한다.
지난 15일 2시경 수피아여자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3·1만세운동기념탑 앞에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수피아여고는 종교 수업의 일환으로 학교 역사 탐방 활동을 진행한다.

3·1만세운동길을 나와 박애순 열사와 윤형숙 열사가 1919년 3월 10일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수피아여고를 찾았다. 오후 2시경에는 학교 역사 탐방 수업이 한창이었다. 학생들은 ‘3·1만세운동기념비’ 아래서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수피아여고 교사였던 박애순 열사가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했다”며 “윤형숙 열사는 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일본 헌병대에 의해 왼팔과 오른쪽 눈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에 관심이 많다는 김하율(17)씨는 “학교의 오랜 역사를 알아볼 수 있어 좋다”며 “윤형숙 선배님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수피아여고는 ‘광주3·1운동기념사업회’와 매년 3월 초 ‘광주3·10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연다. 지난 8일 열린 행사에는 시민과 학생 700여명이 행진에 참여했다.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광주의 아버지’ 최흥종

양림동 곳곳에는 ‘양림 한 바퀴’라는 역사 시설 안내 표지판이 있다. 기자는 거리의 표지판을 보고 수피아여고 근처의 ‘조아라 기념관’과 ‘최흥종 기념관’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조아라 여사는 수피아여고 출신으로, 아동 복지사업에 앞장섰고 ‘YWCA 운동’에 힘써 광주의 어머니로 불린다. YWCA운동은 △Young 청년운동 △Women 여성운동 △Christian 기독교운동 △Association 민주적 회원운동을 뜻한다.

최흥종 기념관에서는 어릴 적 광주 장터에서 ‘최망치’로 불리던 거친 청년의 일대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방황하며 청년 시절을 보내던 그는 ‘유진 벨’(Eugene Bell) 선교사를 만난 후, 평생을 한센병 환자를 돌보며 살았다. 3·1운동을 하다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두 기념관에서 그들의 일생을 만화와 그림으로 쉽게 감상할 수 있었다.

 

독립운동 역사와 일제강점기 잔재 공존

양림동 사직공원에는 일제강점기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광주시는 지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광주 곳곳의 일제 잔재에 ‘일제 식민지 잔재물’(표지판)을 세웠다. 표지판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일본인 대피를 위해 만든 방공호 지하 시설과 ‘양파정’의 친일인사 현판(시문)이다. 방공호는 안전모를 쓰고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일제가 전쟁시 일본인만 대피할 수 있게 만든 시설이라는 설명에 식민지 역사의 참담함이 느껴졌다. 양파정은 사직공원 안에 있는 정자로, 수많은 현판이 붙어있어 어떤 현판이 친일인사의 시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자는 양림동 일대를 돌아보며 근현대사 이야기를 만났다. 남구와 양림동,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근현대 역사가 잘 보존되어있어 당시의 역사를 실감나게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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