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소리에 몸을 뉘이며 ‘다이인(die in)’
약 3만여명이 참여한 행진

도로 위에 누워 인간들이 멸종한 상황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다이인(die in)’ 퍼포먼스를 하는 참가자들의 모습.
도로 위에 누워 인간들이 멸종한 상황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다이인(die in)’ 퍼포먼스를 하는 참가자들의 모습.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오후 4시가 되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거리를 행진하던 약 3만여명(주최측 추산)의 사람들이 아스팔트 위에 몸을 뉘었다. 눈을 감고 누워있어 마치 죽은 듯한 상황을 나타내는 이 퍼포먼스는 기후 위기로 인해 인간들이 멸종한 상황을 몸으로 표현한 것이다. ‘9·23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이러한 ‘다이인(die in)’ 퍼포먼스가 기후 위기를 가속화하는 이 체제를 멈춘다는 의미 또한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약 3분간 울렸던 사이렌이 멈추자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We Will Rock You’ 노래에 맞춰 발을 구르고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광주에 모인 60여명의 사람들

한 시민이 종이로 만든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한 시민이 종이로 만든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9월 24일 ‘세계 기후행동의 날’을 맞아 지난달 23일, 기자는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열린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다. 이는 기후 위기 해결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로 지난해에는 3만5,000여명이 모인 환경 분야 최대 규모 행사였다.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광주에서도 약 60여명의 사람들이 오전 8시부터 시청 앞에 모여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김광훈 광주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장은 “광주에서 각 단체들이 열심히 기후 활동을 하는데, 이들이 총론적으로 모일 필요성을 느꼈다”며 “우리의 주 무대인 광주가 기후 위기에 소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어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하며 오늘 행진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9·23 기후정의행진 광주참가단 준비팀을 맡고 있는 배준영 정의당 광주광역시당 사무처장은 “9월 한 달 동안 전 세계의 기후 시민들이 많은 행진과 집회를 벌이고 있다”며 “그들과 우리가 함께한다는 연대감을 갖고 행진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후 악당 잡는 게 쉽지 않아요”

본격적으로 행진을 시작하기 전, 서울 시청역 부근에는 기후 위기와 관련된 부스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각 단체들은 “기후 위기는 인권 위기” “자본주의 철폐” “학교부터 기후정의” 등 저마다의 슬로건을 걸고서 사람들을 맞이했다.

기자는 그중 “기후 악당 기업을 맞춰라”라고 쓰여 있던 노동당 부스에 참여했다. 부스 안쪽 면에는 여러 기업들이 그려져 있어 ‘가장 악독한 기후악당기업’을 공을 던져 맞출 수 있었다. 던진 공이 계속 빗나가자 부스 운영자는 “기후 악당 잡는 게 쉽지가 않아요”라고 웃으며 직접 가까이 가서 공을 던져보라고 했다. 드디어 공을 맞추자 지구 모양 타투 스티커를 받을 수 있었다. 1시 30분이 되자 “곧 무대 발언이 진행되니 부스를 마감해달라”는 외침이 들렸다.

 

석탄화력발전소도 탈핵·탈석탄

발언이 진행되는 동안 행진할 때 손에 들 팻말을 만들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소품이나 옷을 착용하고 종이 팻말 등을 들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팻말들을 구경하는 것도 행진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기자는 사용했던 택배 상자에 ‘함께해요. 9·23 기후정의행진’이라고 크레파스로 적었다.

“급식에 고기 NO” “기후재난으로 죽기 싫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등 팻말에 적힌 문구들은 현재 기후 위기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단순히 더운 날씨 정도가 아니라는 걸 나타내고 있다. 그중 탈핵·탈석탄을 외치는 팻말 또한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팻말을 들고 있던 건 다름 아닌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이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기후정의를 반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송민 한국노총 공공노련 탈석탄 일자리위원장은 “저희 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중립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의 생존 투쟁에도 적극적인 응원 부탁한다”며 “발전소 폐지와 함께 사라지는 노동자의 삶을 정부가 나서 보호하는 게 탄소중립기본법에 명시된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발언했다.

 

기후 위기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

참가자들은 참가 단위별로 두 방향으로 나뉘어 서울 시내를 행진했다. 지난해에 참가자가 많아 행진이 느려졌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서울역을 거쳐 용산 대통령실까지의 거리를 행진했다. 반대 방향의 참가자들은 종로 SK그룹 본사를 지나 주한일본대사관을 거쳐 광화문 정부서울청사까지 행진했다. 행진은 차량을 따라 진행되었다. 기자가 따랐던 6번 차량은 행진의 가장 마지막 차량으로 단체들을 제외하고도 많은 시민들이 따라 행진하여 가장 긴 줄이 되었다. 서울 시민 ㄱ씨는 “친구와 함께 왔다”며 “'기후 위기를 처음 인식한 세대이자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행진은 약 1시간가량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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